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전태일 평전. 감히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사실, 정말 부끄럽지만 다시 읽는 책도 아니고 처음 읽는 책이었다. 1995년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보았다. 그 해 경북대의 한총련 출범식에 영화의 주인공 홍경인이 중앙 무대 위에 올라와서 ‘아침이슬’ 이었나. 하여튼 노래 가삿말도 제대로 못 외운 것인지 버벅대며 노래를 하는 모습에 살짝 실망도 했었지만, 그래도 영화는 그 당시 뜨거운 가슴으로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시대의 표현의 허락이 그만큼이었는지 아니면 감독의 깊이가 그 정도였는지 제작 자체는 화제였지만 영화로서는 사실 그저 그랬다.

내가 솔직히 전태일을 알고 있었나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고 책을 읽고 나서는 부끄러웠다. 한때 의류 소매업을 하면서 옷을 구매하러 평화시장, 동화시장을 새벽에 쑤시고 다닐 때면 평화시장과 전태일의 이름이 오버랩되어 괜시리 친근한 느낌을 가졌더랬다. 이 지옥 같았던 어린 시다공들의 노동 현장 앞에서 태일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현장 앞에서 친근함을 느꼈다니.. 나의 무식함에 정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 됐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착각하지만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전태일 평전에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권력에 저항한 죽음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태일. 그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불꽃이 영원함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삶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그의 삶 속에서, 그의 수기에서, 그의 작품에서, 그의 어머니에게서 많은 의미를 끌어 내주고 부여해 준다.

20대에 읽었어야 할 책을 이제서야 읽고 나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이 시대의 노동자라면 죽기 전에 꼭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책장 손에 닿는 곳에 가까이 두고 두고두고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보고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 보다. 자신의 배고픈 창자를 한 번 배불리 채워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마지막 말이 ‘배고프다..’였으면서도 그는 어린 시다공들의 삶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의 삶을, 그들도 인간인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재단사가 되었고, 노동운동을 하였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노동정치를 하다가 혹은 남의 고통은 모른척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 ‘예전엔 몰랐는데 당해보니 알겠다.’를 남발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의 삶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고생하면서 자라고 평화시장 재단사로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한 전태일’ 이 정도의 짤막한 지식으로 나는 여태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이 그냥 그의 자서전인 줄 착각하고 살았나 보다. 남의 나라 위인들과 혁명가들은 우러러보면서 이 땅, 우리의 삶의 개척자는 모른척했는가 보다.

요즘 우리는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스펙이라는 명목으로, 경쟁의 대열에 들어 서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권력자가 주는 쥐똥만한 콩고물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적응’,’타협’,’겸손’,’순종’,’온건’,’근면’,’성실’ 등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 즉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간’이라는 허울 앞에서 말이다. 앞서간 이들이 죽음으로 이루어 놓은 노동환경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내가 남 보다 한 발 더 나아갈 힘이 있다면, 그 힘을 뒤처진 사람에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만만한 세상은 아니지만, 그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들어야겠다.

몇 군데를 발췌하고 싶어서 적어 놓고 접어놨었다. 그리고 타이핑을 했다가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결국엔 발췌하지 않기로 한다. 이 책만큼은 꼭 사서 읽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별 점이 부족한 책이다.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 평전 – 조영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