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권터 발라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권터 발라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르포기자 권터 발라프의 인권 사각지대 잠입 취재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이 책은 독일인 르포기자 권터 발라프가 독일내에서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인 터키 노동자 ‘알리’로 변장하여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그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불법 고용과 불법 노동 형태를 기록하고 고발한 책이다. 2년 여간의 독일 내 터기 노동자 ‘알리’로서의 삶. 그의 희생으로 인해 독일과 더불어 세상은 변화하게 된다. 단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수많은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1985년도의 책이라고 치고 본다면 그 내용이 세상에 미쳤을 영향은 충분히 납득이 가도고 남는다.

참 재밌는 것은 그 스스로도 자신의 분장이 어설프고 터키어도 잘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그가 터키인이라는 생각에 관심도 없고 단순히 어순만 바꿔서 말하는 독일어 연기에도 껌뻑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터키 외국인 노동자들을 경멸하고 차별했으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별 신경 쓰지 않았다. 터키인 ‘알리’로 분한 권터 발라프는 간단한 실전 연습 후에 일자리를 구해서 바로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건설현장의 일, 터키인으로서 천주교 세례를 요구한 에피소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으로 가장해서 장례식 준비를 해본 에피소드, 대기업의 쓰레기와 폐기물을 청소 한 일, 인간실험에 자원한 일, 그리고 건강의 악화로 더 이상 육체적 노동이 힘들어졌을 때 기지를 발휘해 운전기사 겸 경호원으로 발탁된 일 등 어찌 보면 희극으로 느껴지기까지 한 역할극 대본 같은 이 책은 독일내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실랄하게 고발한다.

회색시장으로 불리고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불법 용역 실태와 대기업과 공기업들의 야합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돈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의 인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마지막 부분에서는 동료를 모아 불법을 자행하는 용역업체 사장을 테스트를 한다. 핵 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을 은밀히 처리할 터키인 노동자 6명을 요구한 것이다.(이 상황은 짜여진 연극 상황이었다.) 방사능에 노출되어 당연히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작업 직후 바로 이 나라를 떠나게 하라는 조건을 달고 은밀히 해결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일을 의뢰해도 용역 업체 사장은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돈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들에게는 노동자, 특히 외국인 노동자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죽을 수도 있고, 아니 죽을게 확실한 작업에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돈만 된다면 노동자를 투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1980년대에서, 현재 우리는 자유스러운가?

<얼마 전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나오는 부분이지만,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말하며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들은 저임금에 안전도구도 갖추지 못하고 온갖 어렵고 험난한 현장에 비인간적으로 시달린다. 그와 반면에 내국인 노동자들은 실직에 시달려야 했고, 정규직을 감원하면서 은근슬쩍 언제든지 자르기 쉬운 용역으로 대체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 독일인이 터키인을 독일인의 일자리를 뺏고 삶을 약탈해가는 사람들로 생각하며 악한 감정을 키워나가게 된다. 사회적 갈등은 힘들고 더러운 일은 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기대면서도 그들이 눈에 사라지길 바라는 이중성을 띄게 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라는 이 책이 발간되고 사회적 파급을 일으키며 노동현실을 바꾼 것을 감안한다면, 언론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 80년대의 책인데 30년 전의 과거로 웃어넘기기엔 씁쓸하다. 과연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것이 30년 전의 일 일까?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찾아 기업들이 전 세계로 날아다니고 값싼 노동자들이 내국으로 이주해 오는 이 시점에 과연 추억으로만 바라볼 수만 있을까 싶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정규직, 비정규직, 아웃소싱, 인소싱,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내가 지금 정규직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에만 해도 노동의 형태가 각양 각색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놈들은 더럽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라는 말이 위험하고 더러운 작업 환경을 방치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감춰주고, ‘젊은 놈들은 게을러서, 눈이 높아서’라는 말로 질 낮고 임금이 싼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을 모른척하게 하고 동조했다. 언제부턴가 투 잡, 쓰리 잡을 해서라도 벌어야 하며,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을 얻어내기 위해 어쩌면 목숨까지도 바쳐가며 싸워왔던 사람들의 희생을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며 감추고 있었다.

여러 나라로 번역 발간 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알마에서 발간된 이 책은 3분의 1은 부록이다.기사와 재판과정을 담은..이 책이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외국인 노동자들뿐 아니라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쌍용이나 한진으로 대표될 수 있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알려진 사람들이 그렇게 험한 일을 겪고 있는데, 알려지지 않는 곳에서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접한 지식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고, 거의 깨어 있는 하루 종일 미디어를 볼 때마다 관제 방송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을 1퍼센트의 자본가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99퍼센트의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의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과연 자신의 생각일까? 한 번 의심해 봐야 한다. 불합리한 노동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반박하면 아무 거리낌 없이 ‘빨갱이”종북’소리가 나오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과연 자유스러울까?

작년에는 미디어 협동조합 국민TV도 생기고 국민TV라디오도 개국을 했다. 올해는 4월1일 <뉴스K>개국도 하게 되었다. 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국민들이 만드는 방송을 만들었다. 그 밖에 많은 진보언론들과 생각있는 기자들이 어렵지만 자기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가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올바른 정보를 골라내어 접하는 것 또한 언론 소비자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변하고 있다. 바위를 깨뜨리는 한 방울의 물방울처럼 우리는 지속적으로 몸이 부서져도 부딪히며 거대한 바위를 부수고 산을 옮기고 있다. 시민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도 외국인을 멸시하고 지금도 백인계 혼혈 집안에는 쓰지 않는 유색인종 집안에만 사용하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을 언론에서 마구 써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단일민족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화합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도 많이 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나서 베트남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졌다. 그들이 그렇게 못 살고 있게 된 데는 우리나라의 책임이 너무나도 많은데 못 산다고 무시하고 외국인 노동자라고 무시해서는 안되겠다.

거대 기업을 상대할 때도 우리는 직원이나 고용인으로써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써 ‘합리적 소비를 넘어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하거나 외국의 어린이들에게 불법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하여서 만든 물건은 사지 않아서 그 기업의 행태를 저지하는 그런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아직도 힘든 과정의 연속이겠지만,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방법이 생기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성장해도 부의 집중은 한 곳으로만 되고 있으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발전은 그만해도 됐고, 이제 상생을 해야겠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비평의 탈을 쓴 공격은 발라프가 그의 책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로 이룬 활동의 위대함과 의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비단 독일 내 터키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에 대한 중요한 염려의 마음을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의 주요 세력과 지배층들이 이 책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난 그룹과 단체들이 법적인 수단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발라프를 처벌하려는 이유는 그가 진실을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중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처벌하려는 이유는 그가 진실을 기술했기 때문이다.

부록으로 나오는 뒷 부분이다. 입맛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진실을 말했고 밝혔기 때문에 의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짤린 사람들이 많았던 과거-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현재 진행형 같은데…-가 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까?

요즘 공지영 작가를 비롯 많은 분들이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한 권의 책이 인간 착취에 저항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되다.’라는 뒤표지의 문구가 마음에 든다. 리영희 선생님의 책과 더불어 80년대라는 독일의 그 당시 상황과 책을 발간한 후에 미친 사회적 파급,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 시간, 승소로써 외국인 노동자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기여한 책이라는 점에 있어 별 다섯개도 부족한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