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아이들

거리의 아이들

거리의 아이들
거리의 아이들

거리의 아이들

치 쳉 후앙 지음 / 이영 옮김

책을 덮었다. 막막한 기분이 밀려왔다. 소설처럼 현실이 아닌 듯 펼쳐져 있는 믿을 수 없는 이 책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니…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님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의대 졸업을 1년 앞두고 볼리비아로 봉사 활동을 떠난다. 불행한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실천에 옮기려고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내용이나 작가가 보았던 거리의 영화 몇 편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 책은 아름답고 심플해 보이는 겉표지와는 다르게,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도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고 에필로그 전까지 등장하는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한다. 물론 ‘구원한다’라는 나의 개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중간에 작가도 ‘내가 이 거리의 아이들을 이렇게 계속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만큼 거리의 아이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세계 최빈국 볼리비아의 거리의 아이들.

어떤 아이들은 거리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학대와 폭행에 못 견뎌 가출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해 거리에 버려지기도 했다. 채 5살도 안된 아이들부터 12살이 되면 이미 세상을 다 알아 버린 듯한 거리의 아이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자신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자해를 하고, 실뭉치에 싸구려 시너를 묻혀 환각의 세계로 끊임없이 자신들을 망가뜨리는 아이들과 먼저 찌르지 않으면 남이 나를 먼저 찌른다는 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거리. 이 지옥과도 같은 믿기 힘든 현실 속에서 또 어떤 어른들은 거리를 청소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을 폭행하고 강간하며 몇 푼 안되는 아이들의 돈마저도 뺏어간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거리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진짜 아스팔트, 보도블럭의 거리이다.

상상해보라. 5살도 안된 아이가 보도블럭에 비닐 한 장 덮고 생활을 한다니.. 12살 여자아이들이 단 돈 6볼리비아노(1달러정도)에 몸을 팔면서 생활을 하고, 강간당하기도 하며 또 그 몇 푼 안되는 돈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러다 뒷골목 어디에서 아무도 모르게 칼을 맞고 죽을지도 모르는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가 볼리비아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작가가 만났던 아이들.

메르세데스.

자신을 끊임없이 자해했던 어린 소녀. 소녀는 고아원에서 생활하지만, 날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남자들에게 술과 음식을 얻어먹고 그 대가로 잠자리를 해주며 돌아와 면도칼로 자신을 긋는다. 온몸에 현실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는 칼자국이 난무한 소녀는 결국 어느 날 고아원에서 떠난다.

가브리엘.

거리의 작은 무리의 대장 역할을 하던 가브리엘은 어느 날 고아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가브리엘은 자신을 바꾸려 했지만, 고아원 동료와 시비가 붙었던 어떤 아이를 칼로 찌르고 도망간다. 나중에 만났을 때 그는 칼로 찌른 걸 후회하기보다는 고아원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칼로 찌른 행동을 후회했다.

밍팡.

작가의 여동생. 어느 크리스마스 날 죽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백혈병에 걸려 있었다. 작가는 동생의 죽음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 했다.

다니엘라.

두 아이의 엄마였으나, 작가가 잠시 휴가를 떠났었던 사이에 어린 마리아가 죽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작가와 그의 친구들이 어린 마리아의 장례식을 정성스럽게 치러준다. 어린 마리아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병원에서 시신을 찾아오고, 축복을 받고 관을 준비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사람보다는 거리의 아이들이 무슨 장례식이냐는 듯한 행동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비키.

거리의 아이들 중 화려한 옷을 입고 활기차게 행동했던 소녀. 매춘으로 생활을 하는 이 소녀는 작가를 자괴감에 빠지게도 했으나 희망을 보여 주기도 한다. 비키의 옷차림이 점점 수수해지고 어느 날 5볼리비아노의 수입을 얻었다고 오늘은 아름다운 집에서 잔다고 말할 때 작가는 물어본다. 고아원에서 생활한다고 하자 그는 기뻐하면서도 어떻게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도 몸을 팔 수 있냐고 물어봤다. 비키는 감자칩을 팔고 있었다. 작가의 얼굴은 빨개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로사. 

거리에서 3대가 사는 가족의 3살난 어린아이. 작가는 이 아이를 데려가 좋은 집에서 씻기고 먹이고 하며 거리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했으나 아이는 결국 엄마가 있는 거리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이 책에서 작가가 단 한 명도 구원하지 못했다는 나의 말은 틀린 것 같기도 하다.

거리의 아이들과 1년 여간을 지내며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하며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들의 삶과 꿈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던 작가는 지금도 볼리비아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 1억 명에 달하는 거리의 아이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거리의 아이들을 만나 갱생해주고 도와줘서 성공하게 만드는 휴먼영웅스토리를 기대했던 것은 나의 잘못이었다.

경제와 기술이 선진국의 중산층과 개도국의 빈민층 격차를 점점 더 벌려 놓는다. 정치인들은 우리의 비전을 왜곡하고 있다. 좌파는 거리의 아이들이 결백하고 무기력한 희생자이길 원한다. 반대로 우파는 거리의 아이들을 폭력적이고 게으른, 사회의 해충 같은 존재로 정의하며 그들의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거리의 아이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우리와 똑같이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잡한 인간일 뿐이다.

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하고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 온통 회색인 세상에서 무엇이 검고 무엇이 흰지 정의해보라. 나 역시도 너무나 자주 혼란에 빠진다. 거리의 아이들이 하루 더 생존하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는 것이 잘못일까? 거리의 아이들이 약물을 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돈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일이까? 혹은 아이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돈을 주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만약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거리의 아기들, 소녀들, 소년들 중 누구를 먼저 도와야 할까?

-346p~347p 에필로그 中

멀리 볼리비아의 어린이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땅의 아이들만이라도 내가 공감할 수 있을까? 요즘 것들은 하며 그들의 상황보다는, 그들에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 물려주고 있는 기성세대의 잘못은 외면하며 아이들에게 실패자, 낙오자, 게으름뱅이라는 굴레를 씌우기 위해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아픔은 보지 못한 채 학교 폭력과 청소년 범죄에 대한 TV 뉴스만을 보고 아이들에게 손가락질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생명보다 소중한 딸들이 7살, 12살 된 지금 책을 읽는 내내 볼리비아의 아이들과 겹쳐 보여 마음이 아팠다. 거리의 아이들. 외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외면 해선 안되는 현실, 소설이라면 좋겠지만 엄연한 현실. 그리고, 우리나라 어느 구석에서도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현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볼리비아 거리의 아이들을 만나서 공감하고 함께 지내며 겪었던 일과 아픔, 고민과 좌절과 희망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이 책은 불행한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있다면 첫 페이지를 넘길 준비가 된 것이다. 한 번 첫 페이지를 넘기면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글은 체험단에 선정되어 책을 무료로 받아 읽고 작성 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