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3권

태백산맥 3권

태백산맥 3권

김범우는 예수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시면류관을 쓴 고통스러운 모습의 예수였다. 서른세 살의 나이로 문둥이나 창녀, 걸인 같은, 버림받은  자들의 편에 서서 스스로의 목숨을 버린 청순한 사나이. 가시면류관뿐인 생애를 살다가 끝내 십자가에 못 박히며 저리도 고통스럽게 죽어간 갸륵한 사나이. 스스로의 믿음을 지켜 육신을 버림으로써 인간의 역사 위에 영생의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거룩한 사나이. 종교적인 위압감보다 인간적인 외경감으로 예수상을 올려다보며 김범우는 언제나 했던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 291p

 

그렇지. 그리 보아야 백범의 값을 제대로 평가하는 거겠지. 헌데, 우남의 행동은 정반대였네. 참 유감스럽게도 대중들이 우남을 훌륭한 독립투사로만 알 뿐 그 배행은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세. 이제 조심스럽게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남은 상해 임정의 수반이 될 때부터 말썽이 많았지 않았나. 그가 수반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분이 단재 신채호 선생인데, 미국 정부에 한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매국노 이승만을 어찌 수반으로 앉힐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 그러나, 국제외교를 통한 독립획득이라는 외교론 쪽이 우세하여 이승만이 수반으로 결정되었네. 물론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감안한 조처였지. 이에 분개한 단재는 임정과 관계를 끊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등을 돌리고 말지 않았나.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미국에서 상해 임정으로 온 이승만은 얼마 머물지도 않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네. 미국 교포들이 모금해 준 독립자금을 우남이 유용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가운데, 조선 민족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에 낸 위임통치 청원서 문제가 계속 파문을 일으켜 마침내 탄핵재판소가 개정되었고,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는 선고를 받았지. – 308p

 

태백산맥 3권
태백산맥 3권

문장이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태백산맥을 읽으며 발췌를 하려니 어느 곳 하나 아쉽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역사와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인물들의 각각 세계관이 읽으면 읽을 수록 놀랍다는 생각만이 듭니다. 이런 소설이 어떻게 한 사람의 머리속에서 나올수가 있는지 경이롭기만 합니다.

원래는 한 권을 읽을때 마다 마음에 들어 오는 부분을 발췌하여 쓰려고 했었는데 벌써 7권을 읽고 있는데 이제 3권의 부분을 발췌해서 올립니다. 이 부분을 왜 접어 놨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앞 부분은 일제시대때 부터 왜곡되어 이땅에 자리잡은 기독교에 대한 생각때문이었고, 뒷 부분은 이승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몰랐다가 ‘백년전쟁’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 한다면 우리사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는 신이면서 인간의 몸으로 고통과 고난을 받았기에 위대하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그당시 사회의 빈곤층과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감싸안고 삶을 살아내시다 돌아가셨죠. 믿음이란 그의 삶을 닮아가는 것일텐데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거대해져가는 괴물같은 교회건물의 형상만큼 기괴하게 변형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듭니다.

가난을 죄악시하고, 부를 쫓아 다니는 종교인들은 추악하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 과연 예수가 있을까라는 질문과 만약 신이 있다면 대형교회 목사들부터 지옥불에 떨어뜨리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신은 죽었거나 있어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승만의 이야기는 알면 알수록 이사람을 독립운동가라고 말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행적을 돌아 보면 나라를 팔아먹은 정황만 있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독립운동가를 때려잡고, 자국의 국민들에게 총을 겨눴던 인물인데 이런 사람을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라고 더 나아가 국부라는 칭호로 받들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질수 밖에 없습니다.

독립을 위해 뭔가를 하긴해서 그런 부분은 인정해주는 모양인데, 그것도 알고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취한 행동일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드러난 비행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겠죠. 여하튼 처음 ‘백년전쟁’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그의 실체는 아직도 충격으로 남았습니다. 태백산맥을 먼저 읽었더라면 그 충격이 덜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현실을 봅니다.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적페세력들의 저항은 강하고 집요합니다. 해방이후로 분단이 된 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친일재벌권력자들과 일반국민들의 투쟁의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계급의 경계는 흐려졌지만 그 싸움은 더 내밀해지고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버린 것 같습니다. 때를 놓친 치료는 결국 팔 하나 정도는 잘라내야할 고통을 수반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할 치료일 것입니다.

순간의 감정이 아닌 역사의 흐름속에서 내가 하는 행위와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행동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감정의 배설은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의도완 다른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요즘 소위 진보언론이라고 불리는 매체들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 권의 발췌를 하며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