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2권

태백산맥 2권

태백산맥 2권
“나는 이념이라는 것이 정치지향적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소. 변증법도, 유물론도, 봉건주의도,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모두 정치지향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지배도구일 뿐이오. 봉건왕조를 타도하고 세운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사회가 도대체 절대다수 인간의 삶을 위해 한 것이 뭐가 있소. 그것들은 새로운 구속일 뿐이고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하나도 해결한 것이 없소.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는 20세기 인간들이, 지배본능이 강한 인간들이 윤색해낸 정치연극의 각본일 뿐이오. 그것들은 절대적일 수가 없소. 왜냐하면 모순투성이고 부정확한 존재들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오. 그것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만큼의 모순과 부정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하오. 그러므로 그것들은 절대적일 수가 없고, 신봉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오. 그런데 그것들을 절대적 존재로 신봉하게 되면 그만큼 인간들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오. 인간은 인간이 만든 기계가 아니오. 인간이 인간을 장담하는 것처럼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은 없소. 나는 다만 인간이고 싶을 뿐이오” – 224~225p 중에서, 손승호의 말

 

태백산맥 2권
태백산맥 2권

착취와 억압의 시대. 일본에게 침탈당했던 시대나 해방된 시대에서도 모두 굶주림을 면치 못하던 대다수의 농민들. 친일파들은 다시 활개를 치고, 의식있는 사람들은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주의’를 앞세워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도 싸우다 죽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그냥 거대한 흐름앞에 고개를 숙이고 숨만 쉬다가도 휩쓸려 죽었다.

그놈의 ‘주의’가 뭐가 중요한 것일까? 인간다운 삶.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정신일텐데. 도대체 이념따위가 뭐라고. 주객이 전도되어 그 이념이라는 것에 인간이 끼워 맞춰지지 않으면 그냥 잘라 버린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침대크기에 맞춰 사람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이.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그 당시와 역사적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미군이 점령했던 곳이 남한일부였지만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그냥 이시대에 살면서 그당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과 그 시대의 삶에 들어가서 당시를 평가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던져졌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현실로 빠져 나온다. 그때만큼 목숨을 걸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무슨무슨 ‘주의’를 앞세워 몇가지 단어에 매몰되어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행태는 현재에도 유효하니까 말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흑과 백으로 칼로 무를 자르듯 쑹덩 잘리는 것이 아닐진데, 아직도 상대방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비판적지지를 하지 않는 당신은 ‘박사모’랑 다를게 없다.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는 당신은 우리안의 ‘일베’다. 이런 단어를 쓰는 걸 보니 ‘메갈’이냐? 에이 ‘한남충’같으니라고! 등등 오늘도 sns를 열면 상대방에게 혐오의 단어를 서슴치 않고 붙여대는 사람들을 본다. sns를 열면 살아서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난 내 인생을 돌아 보면 부끄러운 잘못이 많아서 남을 그렇게까지 몰아 세우지는 못하겠던데 말이다.

남에게 던지는 말은 다시 칼날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치게 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이 많은 걸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생각’과 ‘단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 앞서 ‘태도’와 ‘살아온 삶’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살아내야할 삶의 태도’말이다.

여하튼 태백산맥의 시대나 지금이나 배웠다는 것들의 말싸움에, 가졌다는 자들의 권력싸움에, 대가리가 터져 나가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생각할 시간도 부족하고 뼈가 녹아 내리는 줄도 모르고, 일만 하는 일반 서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다 보니 그시대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성장했고, 사회는 얼마나 진보했을까라는 질문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