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산문집

지난 번에 책을 구매할 때 낯익은 정호승 시인의 이름이 걸린 책이 눈에 뜨여서 아주 반가운 마음에 구입을 하였다. 고등학생 시절 그의 시집이 나에게 준 울림은 대단히 큰 것이 였기에 별 다른 망설임 없이 반갑게 받아 들여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지나긴 한 것인지, 나의 감성이 많이 무뎌진 것인지.. 둘 다 이겠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 20년의 세월 동안 나는 시집이라곤 읽어 보지도 않은 것이다. 술이나 먹고 나이트에서 몸을 흔들며 노래방에서 노래를 흥청 거릴줄 만 알았지. 언제 마음속에 시 한 자락 먹여 준 적이 있었을까 싶다. 학교를 떠나서 사회에 나와서 이런 저런 일자리로 돌고 돌을 때 팍팍 해서 그랬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어 본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이 책은 정호승 시인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내 놓은지 7년만에 출간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책도 있었는지 까마득히 몰랐다. 한때는 정말 너무나도 좋아했었던 시인의 소식을 한 자락의 관심도 없이 보냈던 세월이라니..

어렸을때 마음의 강렬함 때문일까? 아니면 시인의 시가 주던 울림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었을까? 20년이 지나 지금 읽는 그의 산문집은 그저 그렇고 동의하기 힘든 내용들도 중간중간 있어서 내 자신이 메말라 있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아무래도 무지했던 10대의 마음에 주는 울림과 지금 알 것 다 알고 쓸데 없는 것까지 아는 나에게 오는 감동이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겠지.

 

실패를 기념하라. – 한 번 넘어졌을 때 원인을 깨닫지 못하면 일곱 번 넘어져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한 번만으로 원인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몫인 것을 거저 있는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에 수십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실패는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한 번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말라.”

“다른 모든 사람처럼 당신도 이기는 법을 배우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지는 방법 따위는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는 법을 배우면 패배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원하던 것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라 필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 더 부자가 되는 거란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中

 

여러 훌륭한 분들의 좋은 글과 말을 인용하며 또 시인의 인생에 있어서 힘들었거나 곤란함을 겪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시인의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나누어 준다. 위대해 보였던 시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산문집의 형식이 그렇듯이 이런 얘기들과 시인의 일상과 시들의 배경을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시를 들려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의 예수> 시집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읽어 주셨었는데 그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어렵게 어렵게 구해서 읽었던 추억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인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시도 침묵이 배경으로 있어야 완성되는 것인데, 주저리 주저리 설명해주시다가 시 한 상 차려 주셔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시를 접했을 때의 충격이나 감동보다는 산문집에서 들려주는 시는 잔잔하고 소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장을 넘겼을때 작은 글씨의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이 글귀는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 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中

 

무려 480페이지에 달하며 근래에 내가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두꺼운 이 책은 종교가 있거나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치유의 책이 될 듯하다. 솔직히 나도 과거의 그 아련하고 강렬했던 기억이 없었다면 정말 놀라면서 읽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정호승 시인이 아버지의 아들이었다가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뒤 쓴 ‘아버지의 나이’라는 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의 세월도 넘게 흘러 버린 내게도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中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정말 가슴이 먹먹해 지는 구절이 아닐 수가 없다.

후반부에 이르러 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라는 제목의 글까지 읽다 보면 시인의 마음을 온전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일반사람들 보다 더 여리디 여릴 시인의 감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얼마나 가여웠을까 싶다. 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힘들때마다 힘이 되어주고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나누어 주고 싶었으리라. 그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시 처럼 날카롭고 따뜻한 느낌은 느낄 수 없었지만, 소소한 일상과 잔잔한 이야기 힘이 되는 한 마디와 시인의 진심이 묻어나는 책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