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냥 이유 없이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은 한 달이 넘게 새끼 손가락 마디에 박아 두었던 핀을 제거 했다. 손가락 끝 마디가 부러져서 고정시키려고 박아 놓은 핀의 길이가 3센치는 되었기때문에 몹시 아플거라고 생각했는데 통증은 없었다. 끝 마디를 고정시키려 한 마디 관절을 더 지나 깊게 박아 넣었었다. 넣을 때는 고통이 심하게 느껴지기때문에 오른 쪽 팔 전체 신경을 마취하고 수술을 했었다. 그런데 빼는 건 이렇게 쉬울 줄이야. 이제는 한 몸처럼 손가락 끝에 꽂혀 있던 녀석이 빠져 나가니 허전해진다. 잡아 빼기 좋게 끝부분을 멋지게 구부려 손잡이를 만들어 놓기까지 했던 녀석이었는데…

간단한 마취도 없이 그 길게 박혔던 쇠붙이를 끄집어 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여전히 내 손가락 같지가 않다. 고름을 빼기 위해서 였을까? 손톱 중앙 부분은 조그맣게 사각형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었다. 지금은 딱정이가 지고 떨어져 다시 시커멓게 막혀 버렸지만. 그래서 지금 내 새끼 손가락은 그렇게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모양도 모양이고 한 달 넘게 관절을 고정 시켜놨기에 내 뜻대로 구부려 지지도 않는다. 내 느낌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나의 새끼 손가락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난 분명 주먹을 쥐고 있는데 쳐다 보면 새끼 손가락의 마지막 마디는 펴져 있다.

현장 노동자이기때문에 항상 회전체에 가까운 곳에 서 있게 된다. 작업의 특성상 회전체에 손을 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우리 회사 대부분의 사고가 창상 내지는 협착 사고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이 물려 있던 회전체에 손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소주 한 잔 마시며 “잘린 손가락~”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되고 부러진 뼈는 잘도 붙어 버렸지만, 십 년을 넘게 일하면서 내 스스로 안전 불감증이 생긴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위험의 한 중간에 서 있다 보면 위험한 것인 줄 종종 까먹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남들보고 다칠까 조심하라고 조언을 하던 놈이 먼저 고꾸라져 버린 것도 창피하다. 사고란 것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인데 오만한 나에게 작은 사고로 경고를 준 것이라 생각해야지.

회사를 다니며 하루 시간을 쪼개며 써야 할 때는 글도 잘 써지고, 사진도 찍어 지고, 책도 잘 읽어 졌다. 다친 손이 오른 손이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한 달 넘게 병원만 오가며 집에서 있으려니 집중이 되는 것이 별로 없다. 하루가 길다 보니 자고 먹고, 잠시 멍때리고 sns를 들여다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영화나 한 편 디비져 본다. 그러나 그 나마도 집중해서 보기 힘들고, 또 보고 나서도 글을 뱉어 내지 못하곤 한다. 느슨해진 몸과 나사 풀린 것 같은 정신으로 한 달을 넘게 보냈다. 진짜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해도 재밌는 줄 모르겠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배부른 소릴 수 있겠지만 직장에 매일 출근할 때면 소중함을 잘 몰랐다. 하루하루 회사에 나가는 것이 곤욕인 적도 있었다. 남들보다 먼 거리때문에 소비하는 출퇴근 시간이 이유였을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번져나오는 거북함이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재미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다쳐서 집에 누어 있다 보니 회사에 가고 싶어 졌다. 사람은 여유로와야 좋지만 마냥 놀기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알쓸신잡”에서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며 ‘그 증거는 일을 하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노동을 할 때 자신의 존재 가치가 느껴지는 것 같다. 생계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노동인 것 같다. 그것이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이든 그렇지 않던 말이다.

이제 긴 휴식을 끝내고 일을 나갈 때가 되었다. 한 참을 쉬었던 일에 아직 잘 구부려 지지도 않는 손가락을 가지고 잘 해낼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다시 주어지는 일에 대해서나 거대한 맞물려 돌아가는 공장 기계를 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 들 것 같다. 물론 다시 일상이 되면 또 지겨워지고 언제 내가 일하고 싶어 했나 까먹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연시 여기고 만만하게 바라 봤던, 내게 주어진 일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할 것 같다. 글 하나도 뱉어 내기 싫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라며 게으름 피다가 그걸 주제로 글을 써볼까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생각과는 다르게 엉뚱한 소리만 지껄이게 된다. 멍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