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이 책을 대선 전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을 읽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그의 죽음 앞에 한 없이 내자신이 부끄러웠다. 조금은 똑똑한 줄 알았지만,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것에 휘둘려 ‘적어도 그들이 이야기할 정도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그를 비난하여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 자책감에 ‘이제는 누구의 말도 맹목적으로 믿지 않으리라. 내가 정보를 찾아 확인하고, 내 눈으로 보고, 내가 내 생각으로 판단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다 이번 대선 전에서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를 받았다.

이제 대선이 끝나고 그렇게 염원하던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났지만, 늦은 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안겨 줄 것이다. 쏟아지는 왜곡된 정보속에서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우린 좀 더 당당해지고 떳떳하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죽음의 빚을 갚고, 문재인 대통령을 그 험난한 자리에 올려 놓은 책임을 지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이제 시작일 뿐인 ‘사람이 먼저인 세상’의 1차 전 ‘민주진영의 사람들 vs 소위 진보언론과 일부 지식인’이 시작 되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대통령이 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대통령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가 성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민사회는 그걸 뒷받침해줄 역량이 아직 없습니다.”/그래서 당신이 대통령으로서 실패하더라도 시민학습을 목표로 끊임없이 언론과 싸우면서 시민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퇴임 후에는 진보의 싱크탱크를 만들어 진보 생태계를 육성하려고 퇴임 직전부터 준비했다. – 16p

 

“그런데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언론으로 여겨지는 매체는 차치하고, 소위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한겨레나 경향에서도 기사만 썼다 하면 문재인을 때린다. 정말로 잘못한 걸 가지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팬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언론은 왜 유독 문재인에게만 가혹한 걸까? 또, 그렇게 두드려 맞는데도 왜 그의 지지도는 계속 올라가는 걸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우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38p

 

“언어 테러를 당했다며 문자를 방송 화면에 보여주기도 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들이 문재인 지지자인지, 당원인지, 아니면 외부 개입 세력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박근혜 탄핵을 가능하게 한 건 시민들의 문자를 통한 압력 행사였다. 시민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문자로 항의도 하고 읍소도 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박사모 역시 문자를 활용했다. 탄핵 의원 명단을 발표한 표창원 의원에게 온갖 협박과 욕설 문자를 보낸 것이 그 예다. 그들은 심지어 정유라를 체포한 덴마크 경찰관에게 정유라를 본국으로 보내지 말라는 문자까지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똑같은 문자가 문재인 지지자의 것은 폭탄이 되고 테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 59p

 

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왕따의 정치학 –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나는 그들을 칭할 땐 ‘소위’ 진보언론이라고 한다. 스스로는 진보를 자처하지만 뭐가 진보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67p

 

미국 언론인 십계명 중 1호는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되어 있다. 진보적 언론인이 자신의 양심적 결벽을 증명하기 위해 진보적 정치인이나 정부를 더 편파적으로 비판하는 게 과연 옳을까? 자기만족은 될지 몰라도 공공선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 119p

 

일관되게 호남 왕따의 방어자가 되어 기득권으로부터 온갖 미움을 샀던,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야 했던 노 대통령에게 호남을 차별했다는 마타도어를 퍼뜨린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이들은 친노와 호남의 분열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다. 황따 이론에 따르면 가해자, 강화자, 동조자가 바로 그들이다. – 309p

 

조기숙 교수는 왕따의 정치학에서 ‘신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간단히 말해서 촛불혁명을 이뤄낸 우리 같은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다. 그는 소위 진보언론이나 구태의연한 노동운동 출신의 정치인 등 과거에 머물러 하나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구좌파’라 말한다. 분명 내가 보수는 아닌 것 같은데 진보의 말은 현실성도 없고, 납득도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중도일까? 글쎄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했었는데 조기숙 교수는 ‘신좌파’라는 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주었다.

정말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수구보수나 구좌파나 다 권위적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 다름 없었다. 거리에선 동지를 외치지만 현장에 들어 와선 위계를 따지고, 진보를 말하지만 내부에선 열정페이가 심각하다. 성평등을 외치지만 가정에선 그렇지도 않다. 소위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조직 내부에서도 알량한 기득권을 쥐고 힘겨루기가 비일비재하다. 신좌파는 이런 권위주의와 차별을 반대한다.

지금은 실망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도 한국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 갔을 때 생활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며, 집단의 이익이 옳지 않으면 거부할 줄도 알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방패가 되기도 하며, 개인이 자신의 생각으로 주변의 삶을 돌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시대가 시작 된 것이다. 변화는 시작됐고, 우리들은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