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공정사회

며칠 전부터 왼쪽 위의 송곳니 옆의 이빨이 걸리적 거렸다. 오늘 아내에게 보여 줬더니 구멍이 났다며 병원에 가잖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제일 오래 치과 치료를 받았던 날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신경까지 썪지는 않았다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을 입을 벌리고 드릴을 영접했어야 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오래 입을 벌리고 있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이 없다.

여하튼 누워서 눈을 가린 채 입을 벌리고 마취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진 않지만 예리하게 내 이빨을 갈아대는 소음 소리를 들으며 있자니 오래 전에 봤던 영화 <공정사회>가 떠올랐다. 마지막 그녀의 복수장면. 누구나 기억속에 강인하게 각인 되어 있는 고통이 바로 치과치료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이빨을 갈아 버리는 그 장면이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었다.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기에 죽어 마땅한 범죄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복수였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사진출처: 영화 <공정사회> 포스터
사진출처: 영화 <공정사회> 포스터

영화는 강간당한 어린 딸의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엄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무너진 공권력과 피해자를 대하는 안이한 태도의 공무원들의 모습. 범인을 집요하게 찾아 가져다 바쳐도 놓쳐 버리는 그 허술함. 바람난 남편과 그 내연녀 사이에서 그녀는 오로지 혼자 아픔을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허술한 대응들을 보여주는 영화때문에 범죄자들이 쉽게 범행을 저지르도록 유발할 수 있지 않겠냐며 평가를 낮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이라도 피해자의 입장이 되서 경찰서에 가 본 사람이라면 공감을 느낄수 밖에 없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다만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쓸데 없이 너무 디테일하게 표현 되어 있는 것은 모방범죄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아마 그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 줌으로써 범인에 대한 관객의 분노로 복수의 장면을 정당화 하려는 감독의 의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또 영화는 예산부족때문이었을 촬영분량을 영리하게 조각내서 끼워 맞춤으로써 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런 기법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예산의 한계에 부딪혔을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주인공 장영남의 연기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소 허무한 결말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뭔가 주인공의 상상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지금은 오래 되서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지만 어떤 장면과 분리 되면서 이루어져 있었기에 이렇게 복수 하고 끝나는 것이었는지 이렇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주인공의 열망을 담았던 것인지 약간 헤깔렸던 기억이 있다. 

저예산 영화기에 자본이 충분하게 투입 된 영화에 비해서 허술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혼자 스스로 복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방법을 선택하고자 했었던 이유를 영화는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끝끝내 답답하고 답답하지만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집요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 유선이 차로 몇 번을 깔아 버리는 그 감정선에서 처럼, <공정사회>에서도 전혀 공정하지 않은, 범죄자를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기가 너무나도 힘든, 피해자는 피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피해자가 되는, 그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