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쉽게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쉽게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1. 요즘은 블랙박스로 촬영한 영상을 소재로 하는 방송 같은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cctv가 없다면 얼마나 많은 범죄들이 묻혀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끔 하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실제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자 동네에 많이 설치한 cctv로 그 동네의 범죄율은 낮아 졌을 지 모르지만 다른 못 사는 동네의 범죄율은 증가했다고도 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인 셈이죠. 결국 범죄의 총합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런 카메라의 효용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우리의 생활을 침해하는 것, 그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느냐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권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종류의 방송을 자극적으로 편성하면서 효율성을 강조합니다. 그런 방송을 보면서 우리는 항상 감시자의 입장에 서게 되곤 하죠. 그런 것들의 경험이 내면화 되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거의 찍히는 대상이고,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지켜 볼 수 있는 순간은 방송에서 교통 사고 블랙 박스를 보여주는 순간, 그 정도에 한하는 것입니다. 집을 나서면서 부터 집으로 돌아 올 때 까지 수도 없이 찍히고 감시 당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우린 그런 방송들로 인해 쉽게 감시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버립니다.

 

2. “맞을 짓을 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무슨 이런 논리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 소리를 너무 쉽게 뱉고, 쉽게 동조합니다. 하지만 맞을 짓을 하면 때려도 되는 것일까요? 이유가 있으면 폭행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놈은 맞아야 한다’는 식의 일본인들의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사고 방식을 우리는 너무 쉽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이유로도 폭력을 행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물리적이건, 심리적인건 수동적인 피해자의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논란이 귀찮고 무서워 참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을 뿐이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그렇게 당한 사람이 왜 작은 기회만 오면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되거나 쉽게 가해자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는 지 말입니다. 단적인 예지만 남자들이 “술 김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식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자면서도 음식점이나 마트 노동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백인에겐 쫄고 유색인종에겐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어렸을 적 맞고 자라 폭력이 내재화 되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경우와 비슷한 걸까요?

 

3. 우리는 대부분이 감시 당하는 사람이면서 감자자의 입장에, 을이면서 갑의 입장에, 노동자면서 자본가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아마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어렸을 때 부터 교육을 시켜 온 결과가 성인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보를 지향한다는 사람들이나 단체에서 일하는 방식이 보수 단체에서 일하는 방식 보다 더 민주적이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것은 사족이겠죠. 머리는 진보적이지만 몸에 밴 생활의 패턴은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라는 단어가 혐오스러움을 내포하는 듯 사용이 꺼려지는 현상, “공부 못하면 너희 부모처럼 된다”는 식의 노동자를 혐오하도록 가르쳐 오던 어린 시절. 강간 피해자의 입장보다 기사 클릭 장사에만 여념 없는 언론과 강간범을 옹호하는 듯한 ‘복장’에 대한 질타 비슷한 것이 통용 되던 시절에 살아 왔기 때문일까요? 그런 경험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제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잠시 정신을 놓으면 깊은 곳에 각인 되어 있는 잘못된 생각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와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런 생각을 우리의 내면에 각인시키려고 하는 것 같고 말이죠.

현상은 동일합니다. 해석을 하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어디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 소수를 지향하고 동조하는 다수가 있기때문인 것입니다. 스스로 어디에 서 있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너무 쉽게 가해자의 입장, 강자의 입장에만 동조해서는 안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