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2016: 영화로만 볼 수 없었던…

밀정 2016: 영화로만 볼 수 없었던…

남들이 재밌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영화 <밀정>을 오늘 보았습니다. 추석 다음날 오후 2시 30분 타임인데도 극장 표를 간신히 끊었을 만큼 만원이더군요. 아끼고 아껴 두었다 꺼내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재밌는 영화이길 기대했으나 허무히 사라지는 솜사탕 같은 영화일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완성도나 편집, 미장센 등은 역시 김지운 감독은 최고구나 하는 생각과 또 한 번 그를 신뢰하게 만들었고요. 보고 나서는 끝내 준다는 느낌보다는 가슴 깊이 무거움이 짓눌러 왔습니다.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며 친일파를 미화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 또 친일파의 자식들은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잘 살아 가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영화의 의미는 남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밀정>을 보고 잠시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또 잊어버리고 살겠지만 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적이 있지만, 친일파들에게 해방의 날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자신들이 다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과 친미파의 거두인 이승만이 나라를 집어 삼키면서 친일파를 대거 기용하고, 그 친일파들에 의해 독립운동가들이 청소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독립정부를 세웁니다. 그 당시의 헌법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른다고 되어 있는데 이제와서 그 날을 건국절이라 말하며 자신들이 다시 부활한 날을 기리려고 합니다.

건국절이라는 것을 법으로 정하자는 움직임까지 있다고 하죠. 건국절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그 이전에 나라가 없던 민족이었고 그렇기에 매국은 있을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제치하에 독립운동가를 때려 잡던 일본군 장교가 해방 후 대통령이 되고, 그의 딸이 또 다시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역사쯤이야 얼마던지 마음대로 다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출처: 영화 <밀정> 스틸컷
사진출처: 영화 <밀정> 스틸컷

영화는 실존했던 항일무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일원인 황옥과 김시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김원봉을 비롯해서 각각 영화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와 다른 점이라면 아직 황옥이라는 인물의 친일과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는 것이고요. 실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고문하는 장면은 더 잔인했다는 것 입니다. 또한 의열단에 관한 자세한 기록들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 디테일한 설정들은 거의 모두 허구라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참. 의열단 단원들은 영화 속 공유가 분한 김우진처럼 멋진 슈트를 입고 다녔다고는 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항상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그들이었기때문입니다.

영화의 의미나, 김지운 감독의 편집과 미장센, 그리고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에 깔리는 재즈 음악은 흠잡을 데도 없고, 흠잡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모습은 아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이병헌과 박희순의 이미지가 주연 배우인 공유보다 더 임펙트 있게 다가 왔습니다. 공유라는 인간자체의 뿜어 나오는 매력은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연기가 항상 아쉽다는 생각은 이번 영화에서도 들었습니다.

이런 점은 배우 한지민에게도 마찬가지였고요. 마지막 총격신에서 대역을 썼는 지 아닌 지 잘 모르겠지만 그 신에서 액션이 순간적으로 강도있게 잘 빠진 것 빼놓고는 전체적으로 주파수가 안맞는 느낌이랄까요? 한지민은 단아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시대극에 잘 캐스팅 되는 것 같은데 항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함을 줍니다. 그녀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옥탑방 왕세자>에서 약간 코믹한 로코 연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배우 신성록의 연기는 평가 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량이었고, 그의 인지도에 비해서 비중이 약해 그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너무 쉬웠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캐스팅은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였는데요. 송강호와 더불어 중반까지 영화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야 하는 그 역할을 그가 차지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편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 덕분에 어느 정도 나눠 지고 가야 할 짐을 송강호 혼자 영화 내내 낑낑대면서 짊어 지고 가는 느낌이랄까요? 송강호 혼자 영화의 80프로는 담당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엄태구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에선 민폐를 끼친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캐스팅 미스가 아닐까 싶네요. 어느 정도 아쉬운 수준이 아니었기때문입니다.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능력,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 그리고 특별출연 배우들의 힘과 특출나진 않았지만 영화 전반 내내 받쳐 주는 김동영 같은 배우들, 그리고 그래도 이름 값은 해 주었던 주, 조연 배우들이 있었기에 괜찮았던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영화의 아쉬운 점들은 이 작품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와 무게감으로 상쇄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좋은 그릇에 담아 흥행까지 성공하고 있으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로 독립운동가 분들이 다시 재조명을 받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현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직도 친일파들의 후손들은 살아, 부와 권력을 모두 손에 쥐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회 비판적 내용이 조금만 있으면 극장에 쉽게 걸리지도 않는 시대입니다. 이런 영화와 더불어 다른 의미 있는 영화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소비해 줘서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가 전달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리뷰를 작성하고 남들의 글을 찾아 보니 엄태구의 연기를 형편 없게 본 것이 저 뿐인가 싶군요. 취향을 떠나서 그의 긁어 내는 듯한 발성은 영화 내내 불편했고, 그와 송강호가 부딪히는 장면마다 그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의 역할은 공유와 반대편에 서 있기에 송강호가 그와 공유 사이에서 긴장을 타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 지점에 정확히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생각해 보면 영화의 하시모토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본다면 누가 해도 그 정도의 표현은 가능할 것 입니다. 그의 싸다구 장면의 임펙트도 그의 연기가 뛰어나다기 보다 그 설정 자체가 강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영화에서 분량이 아쉬웠던 신성록이나 박희순 같은 배우가 하시모토의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무명에 가까운 배우가 그 정도의 연기를 대배우들과 보여 줬다는 것은 훌륭하다고 보여지지만 그 역할의 비중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