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의 노트 –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 필립 퍼키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옮긴이 후기에서 “책의 판매를 담당한 사진 전문서점 포토-아이에서 붙인 책 소개글의 마지막 구절인 “초라한 책, 그러나 진실된 내용”이 필립 선생님의 책을 설명해 주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p.151)라는 말이 나의 책에 대한 감상을 대신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책자, 가벼운 종이 질감, 흑백의 소박한(어쩌면 초라한) 첨부 사진들, 그리고 담담한 이야기들. 알라딘에 사진 관련 책자로 올라와 있어 무턱대고 구입했다가 대충 훑어 보고 차일피일 미뤘었다. 딱히 확 끌리는 매력이 없던 책. 하지만 막상 읽어 보니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책은 연습과 단상이 섞이며 바라보기, 아이디어, 압핀, 보는방법, 의도, 빛을 지켜보기, 빛을 찍어보기, 대형 인화, 셀프 포트레이트 찍어보기, 비평, 풍경, 디지털 사진에 대한 재고, 내용-맥락-영향 등의 작은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와는 다르게 나는 필름 사진을 어렸을 적에 아버지 사진기로 몇 번 이용해 봤던 것 빼놓고 성인이 되어서 사진을 시작하면서는 만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가 필름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화에 대한 과정과 단상을 떠올릴때 그 풍경이 이해가 갔다. 

제목 머리에 붙어 있는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한 방법적 기술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 사진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 생각들이 잘 풀어져 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 진다. 

사진강의 노트 -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 필립 퍼키스

기술의 발전이 사회, 정신, 문화를 변화시켜 온 것인가, 아니면 끊임 없이 공백 상태를 만들어내는 문화의 속성 때문에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기술이 발전해 온 것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대단히 흥미로우며 늘 주시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p.36)

인간들이 다른 방식은 제쳐놓고 자신들의 이미지로 신을 만들어낸 것처럼, 권세 있는 자들이 사진을 예술이라고 선고한 후부터 많은 사진가들이 예술 안에서 사진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노력이나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그저 예술처럼 보이는 그럴싸한 사진을 만드는 데에만 죽을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이 점점 빈약해질수록 사진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간다. 갤러리나 전시장에 걸린 대형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크기를 작게 했을 땐 대개가 별 신통한 구석이 없는 사진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p.91)

사실 이 책의 내용을 백프로 공감하거나, 백프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틀과 몇 몇의 문장들은 내가 요즘 사진을 생각하면서 고민하던 부분들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대형 액자로 스케일로 승부하는 사진들, 특이하긴 하지만 설명을 듣기 전에는 이해도 안가는 사진들, 멋지긴 하지만 마음이 움직여 지지 않는 사진들, 그리고 그런 사진들을 보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무리들을 보며 ‘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될까봐. 혹은 그 사람의 기분이 상할까봐 내 감정은 그냥 안으로 숨겼다. 아니. 어쩌면 남들이 다 좋다는 사진을 혼자 별로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 할 용기가 없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난 소박한 사진이 좋다. 예술사진이라며, 풍경사진이라며 쨍 하고, 화려하고, 스케일이 웅장한 사진 보다는. 작아도 삶에 좀 더 밀착하고, 인간의 내밀한 속내를 보여 주는 그런 사진이 좋다. 일상의 스냅이 더 좋고, 치열한 삶의 현상, 또는 투쟁의 현장을 담은 사진도 좋다. 우리네 삶과 너무 동떨어 지지 않은 그런 사진. ‘쨍’한 사진 보다는 ‘찡’한 사진이 좋다.

책에서 뭐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접하고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돌아 보는 시간이 되서 좋다.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 하고, 무엇을 찍을 때 흥분하는 지 알게 되어서 좋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는 소박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좋은 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