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나이트

런던 나이트

런던 나이트 LONDON NIGHT
내가 어렸을 적에는 롤러스케이트장이 인기였다. 줄여서 롤러장. 인라인 스케이트와는 다르게 부츠 같은 것에다 투박하고 잘 돌아가지도 않는 싸구려 베어링을 단 4개의 바퀴와 앞 부분에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달려 있는 고무까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촌스러움의 극치다. 가끔 돈이 있고 세련된 녀석들은 일명 ‘스피드’라고 불리는 선수용 롤러를 타고 왔는데 이 녀석은 축구화 같은 것에다 잘 돌아 가는 일본 베어링에 커다란 바퀴가 고무브레이크 없이 앞 쪽으로 달려  있었다.

내가 롤러장에 처음 가 봤던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까? 옆 집 형들하고 같이 가봤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정신 못차리고 다녔었으니 말이다. 수원 평동에 있던 롤러장은 인기가 많아서 평택, 안산, 심지어 서울에서도 많이들 놀러 왔다. 1995년도 즈음에 폐쇄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추억도 아픔도 주었던 공간이었다. 나도 그곳에서 첫 사랑도, 첫 이별도, 몸 싸움도, 두드려 맞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지금처럼 놀 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롤러장이 어쩌면 유일한 공간이 되었고, 그곳엔 순진한 청소년들과 날라리들, 그리고 수원역의 깡패들까지 모두 섞여 군상을 이루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재밌게 노는 아이들도 있지만, 뒷 골방으로 끌려들어가 이유 없이 두들겨 맞는 녀석들도 있었다. 나는 어땠냐고? 난 그냥 두루두루 친했다. 나도 처음엔 양아치들에게 삥을 뜯길 뻔 했는데 내 중학교 친구가 한 주먹 해서 그 친구가 아는 척 해준 이후로 편하게 신발도 신고 다닐 수 있었지.

그러다 두들겨 맞은 건. 깡패 녀석이 마음에 들어 한 여자아이가 나에게 관심을 보여서 였다. 햇살이 현기증 나게 맑은 날. 평동으로 향하는 굴다리 위의 기차길 옆 풀숲 속에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 지… 그리 때려 놓고는 또 미안하다고 역전 시장 지하상가로 가서 순대에 떡볶이를 놓고 소주를 사준다. 그래 놓고는 피에 절어 존대말을 하는 나 한테 말 놓으라면 자기가 한 살 어리다며 말한다. ㅎㅎㅎ 그래도 그 시절은 참 재밌었다.

런던 나이트
런던 나이트

친한 녀석들이 늘어나고, 학교에서 보다 주말에 롤러장에 가면 더 마음이 통하는 녀석들이 많아질 수록 그곳이 좋았었다. 나중엔 뽀대나는 선수용 롤러 ‘스피드’를 내 것처럼 빌려 신고 타고 다니기도 했었다. 좀 탄다는 녀석들은 주말이면 줄줄이 손을 잡고 그 많은 인파를 헤집고 뒤로 타고 다녔다. 절대 넘어 지지 않았던 나는 가끔 넘어 지기라도 하면 박수를 받을 지경이었는데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다가 브레이크 없는 롤러를 다리를 찢어 가며 ‘끼이이이이익~ㄱ!’ 소리를 내가며 세울때면 나도 내가 쫌 멋진 것 같았다.

롤러장에선 주말이면 댄스타임 같은 것도 해서 춤을 추고 놀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음악과 스포츠, 젊은 아이들이 함께 한 공간에서 시절을 보냈었다. 남녀공학 같은 것도 별로 없던 시절. 우리는 여자를 만나려면 교회나 롤러장 같은 곳을 갔어야 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예쁜 여자애들도 많이 보았지. 가슴 떨려 끝내 고백하지 못했던 여자 아이도. 그럴때면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전속력으로 폼나게 달렸다. 남들보다 조금 더 멋지게 그 여자애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럴때면 신나는 음악 런던 보이즈의 할렘 디자이어나 런던 나이트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런던 보이즈의 음악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기에 너무 적합한 박자였다. 지금 들어도 너무 신나니까 말이다. 아마 이 노래는 내가 대학교에 가고 롤러장이 사라지고, 수원 남문의 코코나이트에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에 박자춤을 추기전 까지 제일 좋아했던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가끔은 원래 가사는 “London nights! Wanna party right and the fever drives you”지만 영어라곤 쥐뿔도 모르던 시절 “런. 던. 나잇. 와라으으으으 씨발좌지”만 외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들어도 발음이 참 절묘하게 비슷하다. 어떤 영화에선가도 건달이 목욕탕에 앉아서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쨌든 마음이 떨려 올 정도로 예쁜 여자 아이가 있으면 “런. 던. 나잇. 와라으으으으 씨발좌지”를 박자에 맞춰 부르며 숨이 차도록 달리던 그 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