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설리의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영혜의 노브라 이야기는 둘째치고라도 소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글로 보는데 이미지로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은 전에 읽었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만약 이 작품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읽었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만한 작품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 영혜가 꿈을 꾼 후 갑작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된 후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주변인의 시각으로 써내려간 연작을 묶어 하나의 장편소설로 이야기를 마감하는 방식도 독특했지만, 각자 이야기를 쓰던 시기의 공백때문인지 아니면 각 부분을 끌어가는 화자들의 시각이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상당히 입체적었다.

처음엔 단순히 육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지만, 이야기는 점점 괴기스럽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기이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감정의 흐름은 이해가 갔다. 특히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두 번째 파트인 ‘몽고반점’의 화자인 영혜의 형부 감정은 정곡을 찔린 것 마냥 흠짓하기도 했다.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작가 한강은 분명히 여자인데 어찌 남자의 이렇게 내밀한 감정까지 그려내는 것인지 당혹스럽기만 했다. 누가 남자를 ‘이성’적이고 여자를 ‘감성’적이라고 했던가. 여실히 틀린 것을 보여 주고,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이성’ 이전에 ‘감정’적인 동물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예술’이라는 이름의 ‘욕망’ 실현은 결국 ‘범죄’와 다르지 않은 상황을 가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감정들은 내 마음속에 몰래 자리하고 있었던 나의 왜소한 알몸을 들킨 것만 같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떻게 남자들을 이렇게 까지 선명하게 그려냈는 지 읽는 내내 놀랍기만 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3 번 째인 ‘나무 불꽃’이 공감이 많이 간다고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 가는 남자의 입장에선 1 번 째인 ‘채식주의자’ 부분의 화자인 주인공 남편의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현실적인 그의 모습에 공감이 간다고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개인의 욕망이 몽고 반점에 그려져 피어 나는 꽃들로 표현되는 2 번 째가 좋았다.

연작소설인만큼 한 파트만 읽어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한 권으로 읽었을때 이야기는 더 탄탄하고 정교해지는 느낌을 준다. 긴 이야기가 드디어 완성이 되는 그 느낌은 좋았다고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맨부커 상 선정이유도 “<채식주의자>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한 문장에 내가 느낀 감정도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롭고 재밌는 작품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싶다.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아쉬운 점은 전에 다른 소설 작품에서도 말했었던 것이지만, 작가도 아닌 사람이 말하는 작품해설 부분은 좀 뺐으면 싶다. 외국에도 이런 사례가 많은 가 궁금한데, 그냥 추천사 정도나 쓸 일이지 무슨 해설이랍시고 몇 장에 걸쳐서 써 놓은 글들을 보면 작품의 가치를 훼손 시키는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논문도 아니고 소설인데 그냥 독자들이 각자 읽고 느끼길 원한다. 정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정답을 말해 주려고 하니 이질감만 느껴진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꼭 다 읽어 보는 내 성격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지만.

여하튼 이게 정답이니까 이렇게 느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 해설 부분을 빼고 소설만 보면 아주 재밌고, 흥미롭고, 훌륭한 문장들로 가득찬 소설이었다. 남들이 극찬했던 책들이나 상 받은 책을 읽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서 읽기가 두렵기도 했는데 다행히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두 번 읽고 싶은 소설이 있다면 이런 소설이 아닐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