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우연히 웹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직장인으로써 이 책 제목을 보고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사 주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백점 만점에 백점을 주고 싶은 책. 읽지 않아도 책장에 꼽혀 있으면 오다가다 제목 보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책이었으니까.

책을 처음 펼칠때만해도 기대만 못한, 그냥 그저그런 뻔하디 뻔한 결론으로 끝나버리는 힐링에세이, 자기계발서의 한 분류일까 걱정도 됐었다. 결론은 단숨에 끝까지 읽어 지는 아주 재밌는 속시원한 책이었다. 당연한 상식이 당연하게 무시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내가 생각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직장인들이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했던 그런 말들을 콕콕 찝어 이야기를 해 준다. 완전 히트다 히트!!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표지를 펼치면 나오는 작가의 소개와 함께 본문 발췌 글 “사실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일’보다는 ‘수행’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수당을 받지 못하는데도 불평하나 없이 서비스 야근을 하고, 상사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이나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분노를 꾹 참고 생글생글 웃으며 받아들이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수행 같다. ‘야근수당을 다 줬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라며 대놓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경영자도 있다. 법을 지킨다고 회사가 망한다면 그런 회사는 그냥 망하면 된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회사를 연명시킨다고 해서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라는 문장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중간중간 재밌는 그림과 하단의 네티즌들의 코멘트가 더해져 책에 재미를 주고 있다. “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라는 멘트는 너무 속시원하지 않은가! 경영자의 마인드로 노동자면서 같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겁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경영자의 마인드로 일 할 수록 노동자는 힘들어 지고, 뒤에서 웃는 것은 경영자 뿐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책에서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어렸을 적 부터 회사의 사축(여기선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인간형을 말함으로 회사의 가축이라는 의미보다 좀 더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으로 길러지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가들은 초등학생때부터 노동자의 권리나 교섭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런 권리 보다는 ‘보람’만을 강조하고 ‘자아실현’ 같은 이상을 꿈 꾸게 하고 있다고 말이다.

회사에선 ‘자아실현’의 기회를 줬으니 ‘보람’만 주면 ‘월급’ 따위는 어떻게 줘도 됀다는 얘기가 은연 중에 교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게 되면 ‘사회성’이 없거나 ‘뭘’ 모르거나 ‘속물’ 취급을 받게 된다. 실제로 회사에서 너무 당연한 요구를 하다 보면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왜 버르장머리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헤이타로 지음

‘상식’이라는 단어는 결국 어떤 근거나 이유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제가 맡은 일을 다 끝냈고 근무시간도 지났는데 왜 먼저 퇴근하면 안 됩니까?”라는 질문에 “그거야 사회인이라면 상식이지”라고 반론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한 관습을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때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그만이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中, 히노 헤이타로 지음, 오우아

우리 서비스업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좋을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에게 제공한다. 이 말을 듣고 “아아, 역시 멋진 나라야.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도 있을 텐데, 사실 이런 현실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격에 맞지 않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에 특히 피해를 보는 것은 종업원이다.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中, 히노 헤이타로 지음, 오우아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원의 태도가 나쁘다고 불평한다면 이해하겠지만,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저렴한 덮밥 가게에서 고작해야 몇천 원짜리 소고기덮밥을 주문하고 점원의 태도가 나쁘다고 난동을 부리는 것은, 분명히 말하겠는데 과잉 요구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얼마 전에도 붐비는 덮밥 가게에서 “음식이 왜 이리 늦게 나와!”하며 점원을 욕하는 손님을 봤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는데 그렇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다. –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中, 히노 헤이타로 지음, 오우아

일본 이야긴데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닮았다. 하긴 나쁜 점은 금방 따라하니까 그렇기도 하겠다. 위의 문장을 읽고 생각난 점은 오히려 비싼 곳에 가면 주눅이 들어 말도 못하는 것들이 저렴한 곳에 와서는 설쳐 댄다는 것이다. 백화점 가선 정가로 사고,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는. 또 고급레스토랑에선 주문 방법도 몰라 쩔쩔 매는 인간들이 동네 식당에 가선 고압적인 자세로 “사장 나오라고 해”를 외치는 사람들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른 가격만큼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받은 만큼의 일을 하는 것이 상식일텐데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이런 상식들이 무너져 내렸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작가가 그냥 노동자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배설적인 문장들로만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거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비난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물론 일이 좋아서 거기에 몰두하고 싶은 사람은 그래도 상관없다. 그런 삶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을 위한 삶이야말로 절대적인 선이며 일을 최우선으로 두는 삶을 살지 못하는 놈은 쓰레기다, 삼류다, 무능하다’와 같이 다른 가치관을 배제하려는 풍조가 너무나 이상하다고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자기 삶에서 어떤 활동에 우선순위를 더 높게 둘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해진 선로에서 벗어나면 ‘갑작스럽게’ 힘들어지는 인생이 되버린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회구조가 잘 못 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너무 열심히 일하고, 너무 과도하게 책임지고, 너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보람’ 이외의 ‘급여’에 대해서 논하면 ‘상식’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자.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일하면 가치가 생산이 된다. 보람 따위 같은 것 말고 돈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보람과 경영자 마인드를 강요하며 그 이익의 분배를 형편 없이 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우리가 생산한 그 가치는 어디로 갈까? 사라지진 않으니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겠지. 우릴 개돼지 취급하는 그 누군가에게로.

우리에겐 일한 만큼 받을 권리도 있지만, 그게 안된다면 받은 만큼 일 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그림으로 취업하면 과로로 죽을 것 같고, 퇴사하면 굶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순환고리를 봤었다. 책에선 우리는 충분히 받은 만큼의 일을 하고 있고, 일 이외의 것에도 보람을 찾을 수가 있다고 말한다. 정해진 선로에서 벗어 나면 힘들긴 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로사로 가는 기차에서 내리지 못 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요는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것이다. 힘들면 힘든거고, 못하겠으면 못하겠는 것이니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치라고 이야기 한다. 

뒷부분의 사축을 탈출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은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속 시원하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림들도 재밌고 유쾌했다. 회사 안의 좀비 같은 선배들 속에서 어울림을 힘겨워하며 ‘내가 이상한 놈이지’라고 가끔은 자책하던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간만에 힘이 나는 독서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