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알베르 카뮈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1942년 작품. 이 소설은 기대했던 것보다 얇았고 간결했다. 문장도 간결하고 건조했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소리, 함께 하면서도 소외되어 있는 사람의 감정을 잘 담아냈다. 뫼르소의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약간은 무신경하고, 냉정히 거절하지 못해 대충 거들어 주며, 그 순간을 살아가는 감정들은 읽는 내내 이해가 갔다. 심지어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의 감정 또한 공감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한 걸음을, 단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나를 겨누었다. 태양빛이 칼 위에서 번쩍 튀었다. 기다란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쑤시는 듯 했다.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서 두꺼운 막으로 미지근하게 눈두덩을 덮었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로 태양이 때리는 심벌즈 소리와 칼에서 뻗어 나온 눈부신 빛만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 칼날은 속눈썹을 쑤셨고 괴로운 두 눈을 파내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모든 게 흔들렸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려 불의 비를 쏟아 내는 것 같았다. 내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잡았다. 방아쇠는 당겨졌고, 매끈한 권총 자루의 배가 만져졌다. 바로 그 순간 짤막하면서도 귀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그리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숙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中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소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는 아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 뫼르소의 무심한 듯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렇게 썩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뭐 한 그런 사이의 평판이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게 된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이 갖지도 멀리하지도 않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지금 현대인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그리고 친구의 여자친구와의 문제로 인해 그의 오빠라는 사람과 부딪히게 되고 결국 그의 패거리와 엉키게 된다. 그러나 살인은 너무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마 날씨가 몹시 화창한 날, 현실이 더 이상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어 보고 싶었던 충동이나, 혹은 맑은 날 옥상에서 지상을 바라보니 그림같이 느껴져 그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감정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문장에 공감이 되리라 생각된다. 사실 그렇게 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하겠다. 현기증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소설은 조금은 대충사는 주인공의 모습과 우발적인 살인이 벌어지는 1부와 재판이 벌어지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소설이기에 1시간 남짓 집중하면 읽어 낼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다. 사회적인 의미를 찾자면 2부에서 찾을 수 있겠는데 재판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1부에서 뫼르소가 살아왔던 그 약간의 거리를 두는 방식의 삶이 그를 냉혈한으로, 치밀한 계획하에 살인을 저지른 악질범으로 만들어 낸다.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물론 어떠한 이유에서건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그들이 원하고 보고 싶은 것을 이미 결정해 놓고 그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아니 그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잘못을 인정하고 적당히 거짓말을 하는 것 또한 내키지 않던 주인공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소설을 읽고 나니 왜일까? 뫼르소는 나를 닮은 것 같았다. 어떤 순간에는 깊은 쾌락과 공감을 느끼지만, 때로는 나 자신이 3자인 것처럼 마음이 차갑게 식기도 한다. 순간 잘못하면 뫼르소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린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항상 조심하며 산다. 아마 사람이란 다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욕하고 싶다고 욕하고, 때리고 싶다고 때리고, 죽이고 싶다고 죽이며 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에겐 공감과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를 그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정의를 내리며 뿌듯해하는 주변인들의 가식적인 모습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모든 걸 이해하는 듯, 자신들이 정의인 듯, 자신의 가식에 도취되어 진실로 진실을 대하는 냥 행세하는 그들의 모습에 현대의 높으신 어떤 분들이 겹쳐졌다. 소설은 짧지만 마음속에 강렬히 남은 것 같다. 알베르 카뮈, 반갑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