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떠나고 싶다. 메르스의 여파로 나가지 말라니 더 나가고 싶다. 어디에서 봤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목과 표지에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를 끌어당겼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적은 돈으로 고생하며 고군분투하는 여행기라는 글귀도 잡아끌었다. 내가 여행기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을까?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를 제외하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여행기도 그렇고 다른 여행기들도 화려한 외형만 쫓아 패키지여행을 하듯 그냥 풍경과 정보의 나열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강하게 끌렸다. 결과는 정말 재밌고 설레는 독서가 되었다.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고나 할까?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볼 때처럼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작고 가녀린 여자아이가 350만 원을 들고 141일간 인도, 모로코, 유럽, 이집트를 여행한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에서처럼 깊은 성찰과 역사적 깊이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여성의 감정선이 책의 전체를 감싸 안는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는 여행. 머무르고 이해하는 여행. 나도 죽기 전에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여행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느낌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미지와 동일하다. 저자 안시내도 결국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즐거웠던 곳은 기억에 아름답게 남고, 어려움에 처했던 곳에선 떠나고 싶어 한다. 아무도 없는 곳, 낯선 곳에서 누구도 없이 자신만이 자신을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성장한다. 그 과정을 함께 하며 독자인 나는 그녀가 되기도 하고, 그녀를 사랑하기도 했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왜 그 당시에 하지 못했나 싶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설레어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 내 큰 딸아이는 이런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에서 만족해야 하겠지.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안시내

“사람에게 받은 감동이 나를 반성하게 하고 회개시킨 감동이었다면 대지에서 느낀 감동은 그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냥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아무런 사족 없이 그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사하라는 굳게 닫혀 있던 모로코에 대한 내 마음의 문을 단숨에 열어 버렸다. 아니, 부수어버렸다. 이 나라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中, 안시내, 처음북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그녀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자금의 여유를 더 가지려고 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여유가 없이 무작정 떠났기에 교통비를 제외한 숙식비에서 카우치 서핑 등의 방법으로 많은 부분을 절약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기도 했고 위험한 상황에서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에겐 좀 더 여유 있게 여행을 하길 권한다. 그녀는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곳 사람들을 경계하다 그것이 지나쳐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곳도 결국 사람이 사는 것.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그녀의 여행기에는 아름다운 풍경도 있지만 사람 냄새가 나서 즐겁다. 그녀가 아직 다 경험하지 못 했던 지구 곳곳을 돌고 돌아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의 후속편도 나오길 기대해 본다. 우주정복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말이다. 작지만 당차고 아름다운 그녀의 여행기가 궁금하다면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