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힐링캠프에 나왔던 그의 모습을 보고 책을 구입했다. 아프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기성세대의 운을 인정하고 지금 청춘들의 시대의 아픔을 인정하던 말들과 독서를 시작하며 소설류는 읽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간간이 고전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작용하여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서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던 “살인자의 기억법”을 구입하게 되었다.

소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의 머릿속처럼 빈 공간이 많아서 2시간 안팎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뒤에 붙어 있는 해설에서 문학평론가가 김영하의 말을 인용해서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다지 어려울 것도, 깊은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흥미롭고 기억을 믿고 따라가는 세상의 어긋남과 붕괴가 재밌었다. 짧은 문장과 끊어진 장면들을 스스로가 상상하며 읽어 내고 채워가는 재미도 있었다. 흡인력도 좋고 가독성도 좋은 소설이었다.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고, 그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도 사람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유행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가 힐링캠프에 나와서 강의를 하기 전 까진 그의 소설을 접할 생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는 좀 의미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현대 한국문학에 대한 식견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우 읽었다고 해야 조정래의 “정글만리”정도가 다였으니까 말이다.

소설을 읽고 나니 그의 다른 작품을 또 읽을지는, 혹은 내 취향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심심할 때 기분 전환용으로 읽으면 시간은 잘 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확실히 그의 문장은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렇게 느끼지는 못했는데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많이 읽었음을 느끼고 놀랐었기 때문이다. “어. 벌써 다 읽었네!”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 노인의 시각과 기억을 바탕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는 연쇄살인마였고, 30년 동안 꾸준히 살인을 저질러 오다가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는 병에 걸리고 기억을 잃어 가면서 그의 곁에는 딸 은희만 남게 된다. 딸마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앞에 어느 날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 나타난다. 그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은희에게 접근한다. 주인공 김병수는 그렇게 나타난 젊은 살인마 박주태를 은희를 위해 마지막으로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기억은 혼재되고 정신은 까무러치며 그가 믿고 있던 세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2010년도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 같다고나 할까? 중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문장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함으로 남고 결국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제일 무섭다는 것 정도랄까?

사실 소설만 가지고는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 첨부된 길고 긴 해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해설이야말로 제목처럼 웃을 수 없는 농담 같다. 출판사의 의도인지 김영하의 의도인지도 모르겠고, 독자들의 수준을 무시한 것인지 자신의 작품을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인지, 혹은 평론가가 이 작품을 너무 신앙처럼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들에게는 이 소설을 독자가 그들 스스로 느끼고 상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지, 혹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독자들이 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어쨌든 독자들에 대한 믿음과 배려, 그리고 소설이 독자들의 세계를 통해 더 넓게 펼쳐지는 것에 대한 아량과 여유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맨 뒤의 작가의 말 제목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세상의 것’,’독자들의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두렵다면 혼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작가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해석들도 독자들에 힘에 의해서 펼쳐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다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해설 따윈 필요 없다. 내 맘대로 읽을 거다!!” 사실 그렇게 해설이 있어야 이해가 갈 정도로 어려운 작품도 아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나이를 먹어 갈수록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어린 시절이 길게 느껴지고 성인이 되면 짧게 느껴지는 것이 기억력과도 상관이 있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는 아니지만 깜빡깜빡할 때가 많아지고, 소설의 주인공처럼 분명하다고 믿었던 사실이 그렇지 않거나 혹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경우도 있다. 꿈이 사실 같고, 현실이 꿈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제 보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전개, 짧은 문장과 끊어지는 기억과 같은 장면들. 결말을 위한 작은 장치들이 훌륭했고 읽는 내내 지루한 줄 몰랐다. 마지막 사족 같은 해설 부분만 제외하면 기분 좋게 읽었다. 유명한 만큼의 감동이나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역시 그건 취향 문제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손에 잡은 채로 끝까지 읽어지는 힘은 좋다고 평가하고 싶다. 주말에 가볍게 손에 잡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