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1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은 빠른 듯 멈춰 있는 것 같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임감 같은 것에 사서 한참 후에나 읽어봤지만, 지난 국민 TV 지역 모임에 갔을 때 선물 받았던 <눈먼 자들의 국가>를 먼저 읽어 보게 됬었다. 12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이 책의 표지에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는 글귀가 가슴 아프게 새겨져 있다.

#2
작가들이 썼다기에 문학적으로 어떤 호소를 할 것이라 예상을 했었지만, 한 두 명의 글을 빼놓고는 직접적인 언어로 사건에 대해서, 의문에 대해서 쓰여 있다. 몇 작품은 문학적 깊이가 있던 것인지, 에둘러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 나의 이해도가 부족했던 것인지 좀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지만 이 책의 대부분의 글들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었는지, 사건 이후의 일들은 어떻게 됐었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일들, 너무 무거워서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들을 담담히 담아낸다. 다만 기자의 그것과는 달라서 확실히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가 되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3
“368명이라고 했다가 164명이라고 했다. 며칠 뒤 또 174명이라고 하더니 얼마 안 돼 172명이라고 했다. 배가 기운 이후 일곱 번 이상 번복된 거였다. 사고 첫날, 외국 언론에서 조난자의 수온별 생존시간을 따져보는 사이 한국에서는 사망시 보험금을 계산했다. 사람들은 권력이 생명을 숫자로 다루는 방식에 분개했다. 한쪽에서는 ‘재난의 계급화’나 ‘책임의 외주화’와 같은 말이 돌았다. 기업과 정부는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지금도 바다 속에서는 숫자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 차갑게 굳어가고 있다.”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中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4
읽었지만 글을 쓰기가 힘들어서 묵혀 뒀던 책이라 글을 쓰며 다시 슬쩍 훑어봤다. 덤덤한 문장들로 나열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잠시 휘리릭 넘기는 사이에 형광펜으로 그어 놓은 문장들에 책장은 멈춰 서고 가슴은 울컥 거렸다. 벌써 2년이 지나 간 시점에서 누군가는 지옥 보다 더 한 곳이 이땅이었을 것이다. 나는 애써 외면한 채 그들의 죽음을 핑계삼아 가족과 시간을 더 소중히 보내야겠다며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아마 태어나서 작년처럼 여행을 많이 다닌 적도 없었을 것 같다. 이제 개인적인 시각을 조금만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좋은 세상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죽은 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이 일깨워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5
가끔은 몰랐으면 아프지도 않았을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법인데, 먹고사니즘을 포함한 현실의 문제가 적극적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맨날 하는 소리라곤 “이건 아닌데… 아니긴 아닌데…” 이러고 있다. 소극적인 삶에서 딱 한 발만 더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