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 바버라 에런라이크

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 바버라 에런라이크

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희망의 배신”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3권 중 마지막 권입니다. 물론 원제를 생각하면 다른 책 들이기는 하지만 같은 의도와 취재 그리고 흐름은 충분히 시리즈라고 봐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외국의 그것들 보다 한국의 배신 시리즈의 제목이 훨씬 네이밍을 잘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살짝 실망스러웠는데요. “노동의 배신”에서 보여준 바버라의 위트가 약간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긍정의 배신”에서 보여준 날카로움이 좀 무뎌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놓고 보면 이 화이트칼라 집단의 재취업 고군분투기 같은 상황이 저에게는 영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제 사회에 막 첫 발을 내딪으며 스펙을 쌓아 가며 취업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거나 혹은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로 인해 느닷없이 내몰려 새로운 직장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공감을 얻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봅니다.

바버라의 책을 세 권째 읽으며 어느덧 그녀의 사고관과 위트와 문장에 익숙해지고 있는데요. 이 책은 전 작인 “노동의 배신” 보다는 “긍정의 배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원제로는 ‘Bait and Switch’, 사전적인 의미로는 ‘미끼 상술’이라고 해석될 수 있겠는데요. 싼 것이나 보기 좋은 상품으로 유인을 한 뒤에 다른 제품을 팔아 치우거나 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 말을 책의 제목으로 쓴 것은 꽤 마음에 드는데요. 재취업의 시장을 두드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일명 ‘취업 알선’, ‘취업 코칭’을 빌미로 또 한 번의 약탈을 해 대는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 보다 훨씬 더 못하고 그들의 삶을 찬양하기 바쁜 사람들이 많은 시점에서 ‘꿈의 나라’ 현실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그 나라 일부의 현실은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양극화가 이미 심각할 정도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중산층도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일부 찬란해 보이는 몇 퍼센트의 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시민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현실은 그 보다 못하거나 그 보다 더 모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지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력하면 할 수 있다.’를 외치게 하고 ‘실패하면 노력이 부족한 너의 탓’으로만 몰아붙이는 사회의 거짓말을 낱낱이 파헤치려고 기획하고 취재해서 글을 쓴 바버라의 노력은 “노동의 배신”을 보고 가질 수 있는 가난이 ‘무식하고 게으르고 천박한 노동자의 탓’이라고 하는 질문에 ‘그렇다면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화이트칼라는?’이라는 질문으로 들어가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가를 밝히려고 합니다.

 

“노동의 배신”에 뒤이은 “희망의 배신”은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현실을 다룬다. 저임금 노동과 달리 이 경우는 노동이 아니라 구직 자체가 문제다.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위장하여 기업체 임원급으로 취업하려고 수개월간 유료 코칭도 받고 네트워킹 행사에도 참여하고 이미지 카운슬링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구직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기술과 노동을 파는 블루칼라 노동자와 달리 화이트칼라는 ‘자기 자신’까지 팔아야 한다. “CEO가 바보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 행위가 불법의 경계선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해도 당신은 일체의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몸 바쳐 일해야 합니다.”라는 한 카운슬러의 충고는 화이트칼라의 노동 현실을 잘 요약해 준다. 일자리의 안정성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희생되고 있는 것이 그 현실이다.

-이현우 서평가 추천사 中, 희망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비정규직을 포함한 저질의 일자리만 양산해 내면서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청년들의 눈높이만 탓하는 게 과연 옳은 일 일까요? 취업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기에 또 돈을 들여야 하고 그 취업을 미끼로 스펙을 팔아먹는 시장이 생겨난 것 같은 사회적 현상이 만연한 우리 사회와 바버라의 사회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취업을 못하는 것은 경험이 없어서이다. 내가 경험이 없는 것은 취업을 못 해서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좀 더”를 외치지만 사실은 필요 이상의 ‘스펙 과잉’의 상태에서 우리는 바버라의 말대로 이상하고 부족한 것은 ‘나’가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닌지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 시선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의 노력과 함께 ‘사회제도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란 이미 잘 못 된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이트칼라의 하향 이동은 블루칼라와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냉담한 설명으로 무시해 버리기 어렵다. 블루칼라에게는 대학에 못 갔기 때문에, 내 집 마련 전에 애부터 낳았기 때문에, 애초에 부유한 부모를 골라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빈곤에 시달린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추락한 화이트칼라에게는 그런 식의 결점이 없다.

– 머리말 中, 희망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정리해고로 밀려난 화이트칼라들은 다시금 관리자급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그 일은 인맥과 전관예우가 없다면 아주 어려운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40대를 전후로 해서 이런 어려움에 내던져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재취업 코칭을 해준다는 또 다른 시장으로 바버라는 뛰어듭니다. 그곳에서 기업의 성향에 따라 이력서를 마사지(?) 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코디, 화장, 사람과의 네트워크 등등을 계속 몇 개월간 돈을 주고 배우면서 취업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지요. 그래서인지 그 과정에서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재취업에 실패를 하고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계로 들어가거나 폐인이 됩니다. 바버라는 결국 그 엄청난 노력 끝에 취업에 성공은 하지만 결국엔 피라미드에 지나지 않은 일자리였을 뿐입니다.

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내도 정규직보다는 임시직을 고용하려고 들고, 정리해고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단기적인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국엔 능력 없는 사람뿐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내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며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물론 저와는 상관없는 세계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청년들에게는 많은 공감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 바버라 에런라이크
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 바버라 에런라이크

쾌활하라! 복종하라! 인간이 노동과 더불어 자기 자신까지 상품화해서 판매를 해야 한다니 서글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과연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말입니다. 경쟁과 성과주의 사회로 변화한 후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고 수십 년 근속에서 연봉이 조금 많으면 ‘귀족’이라고 불리며 손가락질 받고, 그냥 땅값이 올라서 돈이 돈을 벌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더구나 그들이 소유한 땅들이 친일과 군부독재에 협조한 대가일지라도!)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 양 포장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바버라가 아주 재밌게 분석한 취업과정인 ‘적성검사’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쓸데없는 질문들이 왜 필요한가 생각해보니 그것은 기업이 누군가를 내칠 때 핑계를 대기 좋은 수단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훌륭하지만 우리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함으로써 만약에라도 가질 기업에 대한 반감을 누르기 아주 좋은 핑계라고 말하는데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건지 알 수도 없는 적성검사는 점수가 높아도 떨어지고 너무 낮아도 떨어진다는 소문을 들어본 저로서는 바버라의 이야기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리고 바버라는 그렇게 이력서를 내고 다듬어서 또 내도 결국엔 면접을 보면 이력서와는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는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좀 다를까요?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좋은 직장을 못 구해서 제가 일하는 회사에 3교대 현장노동자로 취업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다니는 직장이나 제 직업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4년제 대학의 학위가 필요할 정도의 전문직종이 아닌 것도 사실인데요. 이렇게 고스펙 취업준비자들을 소화할 수 있는 직장들이 많지 않으며, 기존의 직장도 질이 좋아질 줄은 모르는데, 평균적으로 스펙은 과잉이니 결국 그 많은 사람을 놓고 말 잘 듣고 긍정적인(긍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뽑게 되는 것이겠지요. 결국 기준은 오너 맘??

바버라는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을 통해서 사회가 제시한 방향대로 열심히 살아 보려고 그 현장에 뛰어들어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긍정의 과잉은 오히려 사람들을 망치고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사회는 무책임함을 보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 조금이라도 생활이 나아져야 하는데 일을 하면서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워킹푸어가 되고, 경력을 쌓고 네트워크를 열심히 하고 코칭을 받으면서 인터넷을 비롯 거의 일 년 동안을 직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디든지 날아가서 얼굴을 비추고 열정적으로 생활을 했지만 결국엔 저질의 일자리를 선택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불합리를 꼬집습니다.

바버라는 이 책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세요. 그들과 함께 문제를 공유하고 잘 못 된 것을 바로잡으세요.”라고 말입니다. 며칠 전 변호인을 보고 다시 몇 가지 감상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이제 우리 사회의 시민들도 로또의 확률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미끼 상술’에 속지 말고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잘 살아 나갈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시민들로 거듭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월급을 많이 받는 것, 농민들이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것,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 이런 것들이 ‘당연’한 사회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시민들 개개인에게 ‘열심히 살아라’라고 훈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로서는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던 “희망의 배신”이었지만, 화이트칼라들이나 그 삶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아프도록 공감이 가는 책일듯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