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노동의 배신”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데요. 원제로 보면 이 책이 과연 시리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나라에는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 시리즈로 소개가 됩니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이구요. “긍정의 배신”과 “희망의 배신”은 전미영님이 번역을 하고 “노동의 배신”은 최희봉님이 번역한 책을 읽었는데요. 번역자의 차이인지 원본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세 권의 책 중에 이 책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말투는 해학적이어서 읽는 내내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버라가 이렇게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네요.

앞 부분에 이 책을 기획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저소득 가구들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이 왜 그렇게 가난하기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획을 하다가 그들의 삶의 현장에 누군가는 뛰어들어가 경험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다가 ‘맞아요. 그게 바로 당신이에요.’라는 말에 엮여 저임금 노동자의 삶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바버라는 사실 노동자의 임금으로 그들의 삶이 유지가 되는가를 알려면 굳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그들의 삶을 체험해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냥 수치상으로 답이 나와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본다면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되거나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모르는 절약법이나 이런 것들을 말이죠. 그리고 자신은 아무리 코스프레를 하고 그들의 삶에 뛰어든다고 해도 그들이 될 수는 없기에 그냥 흉내내는 수준이었다고 말하며 말 그대로 ‘체험’ 이상의 삶은 아니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서 최고로 편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그 최고로 편한 상태도 상당히 암울했으며 실제 그 삶 속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은 말할수 없이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니 결국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가전제품이라고는 끽해야 전열기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면 콩 스튜를 잔뜩 끓여 냉동시켜 놓고 일주일 동안 먹는다든지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로 패스트푸드나 핫도그 또는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수프 같은 걸 사먹게 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예를 들어 게일은 지금까지 최소한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에스트로겐 호르몬제를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의료 보험 수급 자격이 생기는 시점에서, 회사에서 서류를 잃어버렸다면서 보험 등록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허스사이드에서는 일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나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에스트로겐 약값을 보험 처리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편두통 때문에 1회분에 9달러나 하는 약을 사 먹어야 했다. 비슷한 예로 지붕 수리공이던 마리앤의 남자 친구는 일자리를 잃고 말았는데, 발에 난 상처에 바를 처방전이 필요한 항생제를 살 수 없어서 일을 너무 오래 쉬었기 때문이다.

-48p 중에서,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권터 발라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책에 나오는 노동자들에 비하면 그들은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상황이 낫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죽기 직전까지 쥐어짜내어 지는 이들의 삶이 더 나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더 가난해 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 “긍정의 배신”에서도 알 수 있었다시피 그들의 가난한 것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불행해지는 것은 결코 그들이 긍정적이지 않거나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사회는 가난하고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 비용을 제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가난은 죄악이고 너희들의 게으름탓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어렸을때부터 학교에서 “너 공부 못하면 농사나 지어나 한다.”라며 노동자인 부모들을, 혹은 미래의 노동자인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멸시하며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에 그 생각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야기가 좀 돌아갔지만, 이 책에서 바버라는 그들의 삶이 결코 그들이 무식해서거나 혹은 게을러서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이 말은 과연 미국에만 해당 되는 말 일까요? 요즘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출발선이 다른 인생들을 살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렇게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한 인생에 사회적 구조의 모순 때문에 노력해도 더 나은 삶으로 바뀌기 힘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바뀐 지금에는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죄의식’까지 덧씌우고 있는게 큰 문제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생산해 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 편리한 생활을 영유할 수 없음이 자명합니다.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보다 그냥 땅값이 올라서 셀 수도 없는 부가가치가 늘어나며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좀 잘 못된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온갖 책들과 드라마, 영화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화하며 그들에게 신화를 덧입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은 그 일부의 부를 위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으로 내몰리고, 사회의 안정망에서 내쫒기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노력한만큼 더 잘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았기때문이라는 것이라는 프레임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그 약한 삶의 기반이라도 유지하려고 밤낮 없이, 쉴 틈 없이 몸이 부서져 병원 신세를 지기전까지 몸이 썩어나도록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샤워 부스의 대리석 벽에는 ‘피가 나듯’ 물이 새놋쇠로 만든 수도꼭지 손잡이에 떨어져 녹이 슬고 있다면서 대리석 사이의 이음새를 특별히 박박 밀어서 하얗게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펫을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 129p 중에서

“노동의 배신”에서는 바버라의 날카로운 지적과 그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필력이 돋보이는데요. 원래는 그렇게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는 부분을 발췌하려고 했었는데 발췌를 하다 보니 좀 진지한 부분만을 발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도 있게 이야기를 풀어 냅니다. 권터 발라프의 책이 좀 무거운 편이었다면 바버라의 이 책은 우리나라의 버전으로 치자면 ‘좌충우돌 아르바이트 분투기’ 정도로 해석될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적고 나니 이 책에 나오는 삶이 가볍게 느껴질 만큼 최저임금에 파트타임이 일상화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일자리와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이 별것 아니게 느껴진다는 것이 가슴아픕니다.

모르는척 하고 살고 있지만,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점점 늘어나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비롯한 불안정하고 질이 나쁜 일자리들이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그런 일자리라도 있는게 어디냐?’라는 사회적 질문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무거운 윤리의 짐을 짊어 지게 합니다.

‘일자리 하나로 먹고 못 살면 투 잡하면 되지!’ 이런식의 노력을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로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사회의 책임은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이지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단순노동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흔히 육체노동이나 단순노동을 ‘노가다’라고 칭하며 무시합니다. 하지만, 저도 서빙을 비롯해서 건설노동자 일도 해보고, 단순 피스를 박는 공장노동자에서 부터 지금은 그래도 약간의 기능을 인정해주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결과적으로 보면 공장에서 일하는 단순노동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단순노동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공부 못하면 농사나 지어야 한다.’고 우리 어렸을 때는 선생들이 가르쳤지만, 이것이야 말로 정말 무식한 소리가 아닐수 없지요. 절대 무식하면 농사를 지을수가 없습니다. 아파트에 시멘트를 바를때도 무식하게 발라대고 배합한다면 그렇게 지을수도 없고 우리가 안심하고 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생산되어 이 시장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단순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은 복잡하며 고급노동이고, 몸으로 일하는 노동은 단순하며 저급노동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노동의 배신”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제가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적으며 내뱉는 말처럼 무겁거나 직접적이지 않아서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저 임금으로 아껴가며 살아가려고 아둥바둥하는 바버라의 모습에서, 그 기본적인 휴식권 조차 마음껏 허락되지 않는 바쁜 일을 하면서도 어려운 동료들끼리 서로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에서, 남들이 다 무시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름대로는 자긍심을 가지고 그 일을 사랑하며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느낄수 있어서 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가난하고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며 생각하고, 서로를 챙기고 절약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가는 모습들 때문이겠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책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 책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아서 이기때문일 것이고, 이 책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어라 일하고 무시당하고 어리둥절해하다 마침내 분노하다!
앉지도 떠들지도 먹지도 말라고? 쉴 새 없이 음식을 날라도 손에 쥐는 건 고작 최저 임금 몇 푼. 그러니 싸구려 모텔을 전전할 수밖에. 똥 묻은 변기를 닦아 줘도 집주인들은 고마워하지 않아. 오히려 우리가 뭘 훔쳐 가지 않을까 감시하지. 그 사람들 눈엔 우리가 보이지 않아. 인성 검사에 약물 검사에 대단한 오리엔테이션까지 거쳐쓴데 하는 일이라곤 옷 개는 단순노동. 말로는 ‘동료’라는데 사실은 노예야.

-커버 페이지 중에서

 

사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진실’을 바로 보자는 것이죠.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인 변화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력과다’와 ‘스팩과잉’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가난이 개인의 문제일 뿐인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다소 어두울수 있는 소재를 유쾌한 글로 사회에 명쾌한 질문을 던져준 바버라 에런라이크라는 작가에게 고마워하며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좋은 책들을 써 나가고 계신 많은 작가와 저널리스트들에게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실을 바로 보는 것.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