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이 책은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에 해당하는데요. 밝음, 긍정의 이면 또는 다른 얼굴 정도로도 해석이 가능할 듯 싶은 제목 “Bright – Sided”의 이 책은 긍정의 이데올로기가 지닌 또 다른 얼굴을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긍정 = 옳은 것, 좋은 것으로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그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만, 불평, 비관주의자로 몰아 붙이는 이 시대에서 이런 책을 과감히 집필해서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이자 박수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 읽었다면 감동이 더 많았을 텐데요. 아무래도 이런 이론과 생각에 대한 부분이 이제 많이들 보편화 되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러 팟캐스트를 통해 이런 생각을 많이 접하고 있던 저에게는 그렇게 새로운 부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나 동기유발강사들과 기업과 국가의 이익관계가 맞아떨어져, 아직도 우리에겐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말하며, “회사에서 짤리건, 사태가 나빠지건 불만을 갖지 말고, 그 책임이 있다면 바로 ‘너’ 때문이니, 남탓이나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라. 노력하면 너도 1프로의 부자가 될 수 있고, 안된다면 그건 모두가 네 탓이다.”라는 총체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 꼭 한 번쯤 읽어 줘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모든 것에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며, 밝은 면이나 장점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것이 결코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긍정을 가지라라는 메시지가 기업과 국가와 종교의 이익과 만났을 때 시민에게 시민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너무나도 나쁜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들의 영혼까지 쥐어짜도록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탄생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 이익을 누리는 상위 1프로의 집단들도 자기 환상에 빠져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듣기 좋은 것만을 듣고 보기 좋은 것만을 보다가 결국 세계 경제를 파탄내는 결과에 이르렀다고 “긍정의 배신”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긍정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에서는 칼뱅주의를 비롯해서 긍정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지를 역사적, 과학적, 사회적 검증을 하고 있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 긍정에 대한 의심을 유방암 판정을 받고 나서 치료의 과정 중에 하게 되었다고 하던데요. ‘유방암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까지 말하며 긍정의 마음을 강요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의심으로 출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마음이 면역력을 높게 해서 암세포를 억제한다.”라는 말과 비슷한 말은 저도 개인적으로 참 많이 들었던 말인데요. 투병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전혀 근거도 없다고 말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삶의 마지막을 괴로움에 빠져 살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긍정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런 잘못된 정보나 홍보들로 인해(심지어 암에 걸리는것은 나쁜 마음과 자세 때문이라고 말하는 강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치료를 하다 재발될때 마다 더욱 더 큰 고통과 도덕적인 무게까지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와서 결국 긍정이데올로기로 인해 더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과연 긍정이데올로기가 좋기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긍정의 배신”에서는 긍정이 동기유발사업으로 변질되고 그것이 어떻게 기업에 파고 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말해 주고 있는데요.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예로 듭니다. 저도 딱히 이 책을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참 단순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1000만 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내용은 간단히 다음과 같은데요. 미로에 치즈를 먹으며 사는 작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매일 있던 자리에 치즈가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이 작은 사람들은 부당하다고 불평하고 화를 내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이죠. 한편 미로 속에 쥐 두 마리도 있었는데 이 쥐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치즈가 있는 다른 곳을 찾아 달려간다고 말하며 “그들은 지나치게 분석하지 않고, 일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지나치게 분석하고 불평하는 인간의 위험천만한 속성을 극복하고 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직장에서 쫓겨나면 조용히 입 다물고 나와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재빨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엔 환경요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그 환경요인을 바꾸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어쩌면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자신을 세상에 맞춰가며 사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긍정의 힘으로 자기자신을 최면시키고 부정적인(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사실들은 받아들이지 않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작가는 긍정의 반대를 부정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데요.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 또한 또 다른 왜곡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현실을 현실대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해서 사회를 예측하고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런 부분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편인데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또는 사회적 제도의 개선만으로 바뀌는 것보단 둘 다의 변화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불합리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바로 퇴출 당하기 아주 좋은 사회에서 이렇게 살아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요. 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삶 보다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에 더욱 “긍정의 배신” 같은 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셀리그먼의 공저자 크리스 피터슨이 2008년 <플레인 딜러>에 “기업 임원들이 특히 이 새로운 행복과학에 열광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긍정심리학은 아무래도 고용주의 편에 서 있는 듯하다. 피터슨은 “완고한 기업 문화가 이제는 더 적은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실적을 끌어내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노동자들이 행복하면 더 열심히 일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그쪽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 238p 중에서,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긍정의 힘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차단하고 비판자들을 몰아내며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주주들의 수익을 뽑아 내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대량의 ‘정리해고’를 했습니다. 그 상처를 최소화 하고 기만하기 위해 동기유발 강사나 학자(?)들을 동원해 ‘해고는 또 다른 기회’라는 이데올로기를 퍼트렸다고 합니다. 그런 책들 또한 너무나도 도서 시장에 많이 나와 있는 건 저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기업들은 긍정이라는 이면에 숨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긍정적이지 못한 개인들에게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심리 통제를 위한 대규모 실험이라고 생각해 보라. “현실은 엉망진창입니다.” 박사 학위가 있는데도 의료보험 등의 혜택이 없는 단기 계약직 일자리밖에 찾지 못한 컴퓨터 공학자가 내게 한 말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쉽게, 분명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적절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해, 혹은 더 인간적인 기업 정책을 요구하기 위해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평생 노력을 바쳐야 한다.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 뿐이다.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난 현실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업이 해고된 노동자들과 과로에 시달리며 아직 버티고 있는 직원들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 곧 긍정적인 사고다.

– 165p 중에서,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경제를 무너뜨렸나

아무도 금융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 경제는 새로운 고점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경제 논평도 낙관적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그들의 권고대로 사람들이 자기 집을 ‘현금인출기처럼’ 이용함에 따라 집값 상승이 전체 경제를 밀어 올렸고, 집값은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 되었다.

2008년 말, 보기 드문 경제 비관론자 가운데 한 사람인 폴 크루그먼은 어째서 아무도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거대한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는가?”라는 수사적 물음을 던진 뒤 “누구도 잔치의 흥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을 제시했다.

-245p 중에서,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이렇게 세계경제위기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 신문들은 아직도 부동산 신화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부동산 가격 바닥 찍었다.’라며 바닥찍었으니 다시 올라갈거다 그러니 빚내서 집사라라는 식의 기사가 지난 한 해 동안 경제신문들에 얼마나 많이 실렸는지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특이 언론환경)이 좋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예전에는 충고하는 친구를 옆에 두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긍정적 사고를 주창하며 의문이나 반론, 즉 부정적(비판이던 뭐던 사실은 내 말에 반대하는, 혹은 오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고는 이미 사회 곳곳에 퍼져 있기때문에 아주 진보적인 단체에서도 약간만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어려워지는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누군가 “민주주의는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참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말씀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작가의 맺음말에 있는 한 부분을 더 발췌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기에 “긍정의 배신”은 더 의미가 있던 책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마무리 합니다.

 

수백 년 동안, 적어도 종교개혁 이후에 서구 엘리트들은 빈곤이 자발적 조건이라며 우쭐거렸다. 칼뱅주의는 가난이 태만을 비롯한 나쁜 습관의 결과라고 했다. 긍정적 사고는 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의식 탓이라고 했다. 희생자를 비난하는 이런 시각은 최근 20년 동안 우세했던 경제의 보수주의와 딱 맞아떨어졌다. 복ㄱ지 혜택을 받던 사람들은 자부심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렸고, 해고되었거나 해고를 눈앞에 둔 노동자들은 동기 유발 강연장으로 떠밀렸다.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를 계기로 삼아, 빈곤을 개인의 결점이나 마음의 기능장애로 보는 생각은 버리자. 실업급여나 무료급식을 받으려고 줄을 선 사람들 중에는 게으름뱅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힘껏 노력한 사람들도 있고, 고질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타고난 낙천주의자도 있다. 앞으로 경제가 회복된다 해도 우리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 빈곤을 향해 굴러 떨어지는 게 얼마나 쉬운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유하고, 성공을 거두고,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이라고 행복이 당연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필연적으로 행복이라는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과 감정을 교정하는 내면으로의 여정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제방을 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치료제를 찾아내고, 긴급 구조 요원들을 강화하자! 이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으며 어쩌면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는 내 나름의 ‘비법’을 공개하며 이 책을 맺으려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282p 중에서,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우리는 그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속에 새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