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지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지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지음

열정노동의 전혀 아름답지 못한 실체에 대하여…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시사in의 칼럼에서 읽었던 열정 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되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었습니다. 또 최태섭의 “모서리에서의 사유”를 읽고 꽤 많은 공감을 했기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과 기업에서 말하는 동기부여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답지 못한 실체에 대하여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과 생각들에 대하여 좀 더 명확하게 해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말이죠.

그러다가 마치 탄식처럼 ‘열정 노동’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이 말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이 사회가 얼마나 사람들의 열정을 당연하다는 듯이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틀어막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여는 말 中

“당신들이 원해서 직장에 다니는 것 아니냐”
책에 나온 말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 팀장이 조회를 할 때면 고정으로 하는 말입니다. 당신들이 원해서 회사에서 사용해주는데 감히 휴일근무를 나오지 않느냐는 맥락에서 나오는 말이죠. 어찌 들어보면 참 그럴듯한 말입니다. “당신들이 원해서””당신들이 좋아서”라는 말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의 근간조차 우리 스스로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마법의 주문인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생산의 논리로만 따지면 싫어서 하는 일보다 좋아서 하는 일이, 무심코 하는 일보다 즐기며 하는 일이 누가 봐도 훨씬 더 능률이 좋습니다. 즐기면서 일하고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주는 것의 결과가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라”라는 말로 돌아오는 것이죠. 이런 것에 대한 의문은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라는 말로 묵살되기 일쑤이고, 실제로 이런 불합리에 질문하는 사람들은 자리에서 밀려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에 대한 질문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습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는 프로게이머나 연예인 지망생 등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열정 노동자’들의 모습부터 원치도 않게 사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없어지고 사장들만 남아 가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열정’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 어느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지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지음

기업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자본가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에게 고용되지 못할 것이다. 구직자들은 제각기 특별한 존재임을 주장해야 한다. 말하자면 ‘영웅’이나 ‘초인’이 되어야 한다. ‘평범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비범한 존재 방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자본주의가 새롭게 발견한 열정의 ‘쓸모’이다.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본문 中

‘평범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비범한 존재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문장이 지금 시대의 젊은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심장에 박힐 말인가 싶습니다. 엄청난 스펙을 쌓고 노력하지만 결국 사회는 평범한 노동자로 수용하는 시스템밖에 갖추고 있지 못하는 현실. ‘열정’을 가지고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 ‘임금동결’과 ‘정리해고’로 보답해주는 현실. 양질의 일자리는 만들지 않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도 과잉 스펙을 유도하여 젊은 청춘들의 몸을 썩어가게 만들면서도 ‘노력 부족’ ‘긍정 부족’이라며 그들의 영혼까지도 모욕하는 현실을 지금 청춘들은 ‘남들은 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출발선이 보이니까요.

이 책에서 짚어 주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이런 ‘열정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비단 기업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진보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청춘들의 ‘희생’을 담보로 어떤 보수적인 기업들 보다 더 심하게 ‘착취’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진보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정당한 권리는 사치로 치부되고 열정 부족으로 멸시당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치를 창조하지 못 해서 다 같이 빈곤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 같이 또한 헤쳐나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열정 노동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한편에서는 가치가 창조되고 이윤이 발생하고 그 이윤을 독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열심히’라는 프레임 뒤에 숨어 ‘불합리’와 ‘불평등’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죄의식’이라는 것까지 덧씌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게 아닐까요?

책의 말미에는 해결책에 대한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좀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이 ‘열정 노동’이라는 부분은 문제의 심각성은 알겠지만 해결책이 마땅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제 제기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들은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졌으면 하고, 저 같이 기성세대에 편입하는 세대들은 청년들의 이런 문제를 모르는 척 그들의 탓으로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열정’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대가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 지난 책이지만 한 번쯤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