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 책을 접할 기회는 다른 깊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1994년 대학에 첫 발을 디뎠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문화가 그렇듯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흐름에 함께 하며 생활했던 저는, 이렇게 그 당시 읽었어야 했던, 혹은 공부했어야 했던 부분들은 시위 현장에서 나누어 주는 찌라시 몇 장으로 지식의 빈곤함을 채우고, 오다가다 주워 들은 몇 마디에 살을 붙여 술자리에서 무엇인가 아는냥, 시위 현장에 한 두 번 참여했던 것을 가지고 마치 엄청난 애국을 했던냥 생각을 했던 부끄러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결국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갔을 때는 술과 알맹이 없는 달뜬 열정에 시간을 소모하고, 머리가 굳어 돌아가지 않는 이제서야 <역사란 무엇인가>를 펼쳐 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지는 일주일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우르르 쏟아붓던 책 중에 이 책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던 책이었습니다. 책을 구매하려고 검색을 해보니 영화의 영향으로 판매가 늘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에 저도 한몫했다는 생각과, 같은 생각으로 책을 구매했다가 저와 같이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감싸 쥐고 무던히도 읽었을 많은 분들을 계셨을 텐데요. 생각보다 재미없고, 어려울지라도 끝까지 완독을 하시길 응원해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서론을 길게 뽑는 이유는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제가 이 책을 얼마나 소화했을지 저 조차도 의문스러워 그렇습니다. 자판을 두드리기 전까지도 너무 많이 드는 생각과 부실한 이해력 때문에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평을 쓰며 노트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그때의 감상이 원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때문에 첫 문장이 ‘착’ 생각이 나지 않으면 글을 써 내려가기가 수월치가 않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이 서평을 언제 쓰게 될지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정리가 되지 않고 전달에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서평을 써 내려간 이의 부족함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이해를 부탁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분이 E. H. 카라는 인물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가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간단히 책 표지에 씌어있는 작가의 설명을 옮겨 보겠습니다.

에드워드 H. 카 Edward Hallet Carr

189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1916년부터 1936년까지 20년 가까이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였다. 1936년에는 웨일즈 대학의 교수가 되어 국제정치학을 강의했으며 <런던 타임스> 부주필로 언론 활동도 병행하였다. 이어 1948년에는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 기초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1953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였으며 1955년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가 역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평생토록 폭넓은 저술 활동을 하였으며 1939년 <20년간의 위기, 1919~1939>, 1942년 <평화의 조건>, 1945년 <민족주의와 그 이후>, 1951년 <새로운 사회>, 1950~1953년 <볼셰비키 혁명>, 1950년 <소비에트 러시아사> 등의 주요 저서를 남겼다. 1982년 11월 3일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생애를 마감하였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첫 부분을 읽으며 생각나는 것은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였습니다. 역사란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쓰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부분이 생각나는데요. 이 책의 들어가는 말의 부분을 인용하면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가 나누고 있는 대화이다.>

원래 이 책은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저자가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가와 사실>, <사회와 개인>,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넓어지는 지평선> 이렇게 6개의 chapter를 가지고 강의된 내용에서 그는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나열에 불과한 것인가?’,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역사가들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인가?’, ‘역사가들의 주관적인 견해라면 객관적 역사란 존재할 수 있는가?’ 등등의 의문을 던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역사가의 자세와 함께 우리가 역사 책을 읽을 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 듣던 국민TV 팟캐스트에서 영화평론가 최강희씨가 <또 하나의 약속>을 언급하던 내용 중에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 세상이 오게 하려면 이런 영화를 많이 봐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변호인> 때문에 손에 잡기는 했지만, <또 하나의 약속>의 현실이 떠오르게 하는 이 책은 우리가 역사를 바로 봐야 하는 이유까지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로 보고자 하는 이유는 교훈을 얻고 실패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 않다면 어두웠던 과거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아주 오래된 책이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콜링우드의 견해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를 취급하는 것이 아니며 ‘과거 그 자체에 관한 역사가의 사상’을 다루는 것도 아니며 ‘상호 관계에 있어서의 양자’를 취급하는 것이다(이 말은 현재 행해지는 역사란 말의 두가지 뜻 즉, 역사가가 하는 연구와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의 몇 가지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까지 현실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다.’ 그러나 과거는 역사가가 그 배후에 깔린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역사가에게는 죽은 것, 다시 말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역사는 사상에 의한 것’이 되고 ‘역사란 역사가가 연구하고 있는 사상이 그 역사가의 마음에 재현되는 것’이다.

-38P,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스마트북

 

첫 강의 <역사가와 사실>에서 작가는 예전 역사가들은 사실들만을 나열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이 들어가있지 않고 공정하다고 말했었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객관적이라는 증명이 될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과거라는 거대한 바닷속에서,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하며 선택하고 나열하며, 역사를 정돈하는 과정에서, 이미 역사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골라서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 언론들이 사실을 호도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을 약간하다가 친일파로 돌아서선 사람의 과거를 기술하며 친일행적은 빼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실만 기술을 한다면 그것이 과연 사실일지라도 객관적인 기술일까?’ 하는 질문을 해보게도 됩니다.

작가는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기에 역사를 읽고 이해하기 전에 그 역사를 썼던 사람에 대한 이해와 그 역사를 썼던 사람이 살았던 사회 분위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문제를 생각하면 이 부분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린 해방 후 ‘일본에 충실히 부역하던 그들’은 살아남고 ‘독립운동에 몸 바쳐 일했던 그분들’은 죽어 나갔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종북 교과서’몰이를 하며 ‘진짜 역사 교과서’라고 말하는 그분들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군사 쿠데타’가 ‘군사혁명’이 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사태’, ‘광주 폭동’이 되는 날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느낌이 요즘 들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해석의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이 역사가의 일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콜링우드의 말처럼 역사가가 그 등장인물의 마음속 움직임을 사상 속에 재현시켜야만 한다면,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역사가의 마음속 움직임을 재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다루고 있는 사실을 연구하기에 앞서서 그 연구가를 먼저 연구해야만 되는 것이다.

-41P,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스마트북

 

사실이란 결코 어물전에 놓인 생선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이란 때때로 접근조차 불가능한 넓은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같은 것이다. 역사가가 무엇을 잡는가는 우연에 기인할 수도 있으나 대개는 그가 바다의 어디쯤에서 낚시를 하느냐, 어떤 낚시 도구를 사용하느냐-물론 이 두 가지 요소는 그가 잡고자 하는 물고기의 종류에 의해 결정되지만-에 의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대체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실을 손에 넣으려고 한다. 역사란 해석이다.

-42P,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스마트북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고 해서 본래의 산은 객관적 형태가 없다거나 무한한 모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역사상의 사실을 설정할 때 필연적으로 해석이 작용한다고 해서, 또한 현존하는 해석이 어느 것이고 완전히 객관적이 아니라고 해서 어떤 해석이든 우열이 없다거나 원칙적으로 역사상의 사실은 객관적인 해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47P,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스마트북

 

앞서 말한 부분에 대한 반론에 답변을 더하고 있는데요. 위의 논리를 ‘입장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 사실을 ‘입장에 대한 차이’로 치부하는 일본과 그에 부역하는 세력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역사가가 기술하는 역사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을지라도 그 사실이 가지는 진실이나 해석의 우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고 해서 본래의 산 모습의 형태가 없다고 할 수 없다.’라는 논지는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카는 여섯 번의 강의에서 역사가가 기술하는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에, 역사가는 올바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런 시각으로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담아내 교훈을 주어 미래를 조명해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역사를 읽고 이해하기에 앞서 그 역사를 기술한 역사가의 사상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빈곤한 예일 수 있지만, ‘친일에 입각하고 군부독재에 부역했던 자들의 역사’와 ‘항일과 민주화 투쟁에 목숨을 바쳤던 분들의 역사’의 대립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방향에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줍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존스는 어느 파티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술을 마신후 브레이크가 다 낡은 자동차를 몰고 돌아오다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 모퉁이에 이르러, 모퉁이의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 도로를 가로지르던 로빈슨을 치어 죽이고 말았다. 혼란이 수습된 다음 우리는 모여서-이를테면 경찰서 같은 곳- 이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게 되었다.

이 사고는 운전자가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이 경우라면 형사사건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낡아 빠진 브레이크 때문인가? 이 경우라면 불과 1주일 전에 차를 분해 수리한 정비공장에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막다른 모퉁이가 있었기 때문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로 관리국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방에 갑자기 저명한 두 신사-그들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가 뛰어 들어와, 만약 그날 밤 로빈슨의 담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도로를 건너지 않았을 것이고 차에 치어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던 로빈슨의 욕구가 죽음의 원인이다. 이러한 원인을 도외시한 조사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결론은 모두 무의미하고 무익할 뿐이라며 능숙한 말솜씨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청산유수 같은 능변을 가로막고 이들 두 방문객을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입구까지 모시고 간 다음, 수위에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들 두 사람을 다시는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고 지시한 뒤 원래의 조사를 계속할 것이다.

-172P,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스마트북

 

이 예시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안전장치는 거세된 채 모든 것을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우리는 과연 능변을 펼치는 이런 사람들의 등장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등장을 알아채고는 있나 싶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잠식해와서,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내 몸의 사마귀와 같아서 이것이 도려내야 할 것인지 내 사랑스런 몸의 일부인지 헷갈리는 수준을 지나 그것이 내 몸에 붙어 있는지조차 인지하는 수준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작가는 이러한 예시들을 포함해서 역사가가 어떠한 입장에 서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데요. 이 부분들을 읽다 보면 오히려 어떤 자세로 역사를 읽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역사가는 사실에 있어서의 잠정적인 선택과 해석-이 해석에 비추어서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일시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에서 출발한다. 일이 진척되는 상태에 따라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과 정리 역시 양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거의 무의식적인 미묘한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역사가는 현재의 한 부분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에 그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의 상호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열매도 맺지 못한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의미도 없다.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초의 내 대답을 하기로 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52P,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스마트북

 

<역사란 무엇인가>는 1만 3천 원이며, 250페이지 분량의 얇고 가벼운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무게와 깊이는 다른 어떤 책들보다 무겁고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고전이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고전만큼은 누구나 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서점에서 버젓이 파는 책을 사서 읽었다고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가 고문당하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틈만 나면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꼭 읽어 봐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부분을 더 발췌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에 있어서 자유의 전진을 말한 액턴의 서술을 상기해 보자.

<변화는 빠르고 진보의 속도는 느렸던 지난 400년 동안 자유가 지켜지고 확보되고 넓혀져서 마침내 이해되기에 이른 것은, 폭력과 끊임없는 부정한 세력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하여 약자들이 어쩔 수 없이 기울인 집단적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지금 숨 쉬는 공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민주화’는 결코 쉽게 우리의 손에 누군가가 쥐여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