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현석 지음

“착한 책이다.” 이 책의 머리말을 읽고 첫 꼭지를 읽으며 제가 처음으로 무심코 내뱉은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로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작가의 유연한 말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책머리에 나오는 ‘봉지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으로 시작되는 사색과 그 고민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도달할 때 무한한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서평을 쓰는 입장에서는 이런 책을 만나게 되면 너무나 즐거운데요. 그냥 책의 몇 부분만 발췌해도 꽤 그럴듯한 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선 작가의 문장 하나, 사람 한 명, 던지는 질문 한 개가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아마 제가 읽었던 책들을 통털어서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도 편하게 권해줄 수 있는 유일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실제로 다 읽은 후에는 몇 분에게 권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이현석
1984년 1월, 인천 출생, 유년의 대부분은 대구에서 보냈다. 대학 때 서울로 올라가 잠시 도시와 행정에 대해 공부하려고 했으나 사실은 상경 이후 영화판과 시위현장을 전전했다. 대학을 그만두면서 대구로 귀향. 뜬금없이 공부를 시작해 외과대학에 들어갔고 의외로 무탈하게 졸업까지 했다. 지금은 의료소외지역에 멸사봉공하라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작은 보건소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노닥이며 볕을 쬐는 중.

-표지 中

저는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의 책을 처음 접할 때는 신상을 나중에 보는 편인데요. 이 책은 첫 머리를 읽고 나서 바로 궁금해져서 표지를 들춰봤습니다. 나이로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저보다는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과 소양, 경험,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은 너무나도 부럽고 질투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시샘과 놀라움, 그리고 공감 등의 여러 가지 심정의 독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도 작가가 바라보는 사람과 역사, 사회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입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진을 삽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상상과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서평을 잘 쓰고 싶은데요. 제가 느낀 감동을 이 원고를 읽어 주는 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컨디션과 시간이 넉넉한 주말을 골라서 작성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월요일에 교통사고가 나서 이틀을 쉬고, 허리에 복대를 착용하고 내내 일하고, 오늘은 새벽부터 12시간의 근무를 마치고 초주검이 되어서 돌아 온 후에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렇기에 책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오로지 저의 컨디션 탓이려니 하고 화살은 저에게로 돌려 주시길 바라며, 제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이현석 지음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이현석 지음

이 실험이 가지는 의의는 기억을 관장하는 영역과 미래를 상상하는 영역이 겹쳐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도 상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 역사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일을 수치로 여기는 이들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이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처럼.

-31~32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아니지, 당신의 미래 말입니다. 마법과 같은 힘이 주어진다면 내일 당장 어떤 사람이 되어 살고 싶은지 묻는 거예요.”

“지금으로서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요.”

-36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저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려인들과 조선적의 조선인 외에도 한반도의 역사에서 비롯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다. 결혼이주자들과 그 2세들, 베트남에서의 미국전쟁 중 태어난 라이따이한들, 동남아시아에서 섹스관광이 성행한 이후 태어난 코시안들, 입양아 수출국 1위였던 불명예스러운 훈장 뒤에서 세계 각지로 유입된 입양아들, 정치적 이유로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제3국을 택한 이들.

이들을 대하는 우리는 어떤 제스처를 취했던가? 그들이 부끄러운 과거의 소산이라면 이등국민이나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그들이 만에 하나 가시적인 업적을 이루어 신문지상을 장식하면 ‘한국인’이 되기를 강요해왔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다수자인 우리들은 소수자인 그들에게 우리 입맛에 맞는 정체성을 요구해왔다. 다수자 중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의 정체성은 이렇게 모호한 기준에 의해 억압되어왔던 것이다.

-62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미담은 늘 숭고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환경이 가능성을 구속하고 있는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대단한 이들’의 뒤편에는 낙오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잉여가 된 이들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환치되고 포장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곳에서 그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기란, 이간의 영역을 침범한 들개가 등짝을 맞는 일만큼이나 흔하고 쉽게 일어난다. 작은 사막 마을 안에서 한계를 가지고 살아온 삶은 다재다능하고 리더십도 있는 그가 더 넓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꺾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브라힘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잊는 한 방편으로 약에 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 속으로 나는 빠져들었다.

-77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연말이면 예외 없이 모든 미디어를 도배하는 것이 ‘나눔’이다. 그러나 이 ‘나눔’이라는 것은 어쩌면 지독할 정도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얼마간의 헌금에서 위안을 느낀다면 돈으로 심적 평안을 구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헌금과 헌물은 할 수록 아파지고, 어려워지고, 슬퍼져야 하는 것이리라. 수많은 동정심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거기서 비롯된 헌금과 헌물들이 한반도 서른 개 정도는 사고도 남겠지만 현실은 여전하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위가 자기 위안 외에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84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작가는 여행을 하며 만나는 이들, 그들의 사회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지금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기준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맞는가부터, 과연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바라볼 자격이 있는가까지 계속됩니다.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그들의 삶에 잠시 발을 담그며, 그들에게서 우리를 발견하곤 합니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를 읽고, 저는 이렇게 해외를 돌아다니기란 평생을 걸쳐도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는데요. 아마 이 생각은 사진과 독서에 취미를 붙이면서 들은 것 같습니다. 바로 ‘불편한 여행’. 이것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나이를 먹고 가족이 생기면서 물놀이를 가도 워터파크, 어디를 가도 리조트, 펜션 등 안전함을 포장한 편안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가도 유명한 곳만 잠깐 스치듯 ‘나 여기도 가봤다.’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곳에 놀러 간 것인지 리조트에 놀러 간 것인지 구분도 안 갈 정도의 행보를 거듭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장소의 개수를 늘리는 여행보다, 한 곳을 자주 가 보거나, 오래 머무는 여행을 해보고 싶습니다. 힘들더라도 동네에 머물고, 거리를 걷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이야기를 듣는 여행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더욱더 강해졌습니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이현석 지음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이현석 지음

이제 다시 나에게, 그리고 타지에서 지낼수록 점점 나를 규정하는 ‘한민족’과 ‘국가’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밀어본다. 내가 사는 일상에서 전장이란 흔적이 아닌 현재다. 분단으로 지속되고 있는 전장에서 폭력은 인터넷상의 수사부터 현실 권력의 폭력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소위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향해 우스개처럼 ‘종북’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런 혐오의 언어를 아무 죄의식 없이 쓰는 이들은 ‘빨갱이’ 같은 수사가 전장의 기억이 또렷했던 곳에서 저지른 비극을 상기해보아야 한다.

그 비극은 홍콩 섬이나 오키나와와 마찬가지로 섬을 배경으로 했다. 비극은 그렇게 섬에서 섬으로 전파되었다.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몰려 1948년 4월 3일부터 약 반년 동안 군경과 우익테러단체 서북청년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제주도의 사망자 중 확인된 수만 3만 명이며 추정치는 8만 명에 이른다.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인명을 수치로 계산하는 얼치기 효율을 내던지고 한 명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보자. 죽은 육신을 두고 감기지 않는 수만 쌍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을, 안개 낀 오름을, 그리고 이 모든 살육의 현장을 기억하는 한라산을 바라보며 논과 밭과 모래사장 위를 나뒹굴었다. 2003년 당시 대통령은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사과를 하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망자들과 참혹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사과와 ‘평화의 섬’이라는 허울이 무슨 소용일까? 그로부터 십 년 넘게 지난 오늘까지도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있는 제주도 작은 해변의 바윗자락에서 폭력에 대한 예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역사란 부끄러울수록 기억해야 하는 것임에도 종종 그것이 불러오는 무게로부터 도피하곤 한다. 변명은 다양하다. “내 일이 아니므로”, “나와 상관 없으므로”, “내가 바꿀 수 없으므로”. 그러나 이 다양한 변명 속에 존재하는 ‘나’는 과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객체일까? 나는 테리와 다른 홍콩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유의 끈을 풀고 도망쳐, 불의는 참을 수 있어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며, 4년마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5년마다 누구를 찍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따지는 나와 나를 둘러싼 공동체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지.

-137~138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과연 저는 주변의 불합리에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정의를 외치다 쉽게 변절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주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 보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픔과 고통의 해결만을 위해 싸우다, 던져준 콩고물에, 씌워준 감투에 쉽게 동료들을 팔아먹는 자들을 많이 봅니다. 과연 저는 그런 상황이 오면 그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제가 살고 있는 곳과 멀리 있다고 터지는 다이너마이트를 언제까지 외면하고 살 수 있을까요? 이럴 때는 무지하지도, 용감하지도, 양심적이지도, 그렇다고 철저히 비양심적이지도 않은 제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결국엔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꽃다지의 노랫말처럼 한 쪽 눈을 감지 말고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라도 있어야겠습니다. 언젠가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하고 중국의 경제적 팽창의 이점을 우호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시저우의 생경한 전통시장 풍경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 시장, 상품 등과 관계하면서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가치를 잃고 변질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에는 작으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 것들의 가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시저우에 코카콜라와 나이키가 과연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이름없는 마을에서 카메라를 피해 달아나며 잡아보란 듯 웃던 아이들이 폴리프로필렌 소재로 대량 생산된 전통의상을 입고 제발 같이 사진을 찍자며 배시시 웃게 되는 일이 더 풍족한 삶에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하는 일일까? 아마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편리함과 쓸데없는 문명화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분명 우리는 좀 덜 편리해지고 좀 덜 문명화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41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존재했으나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잊힌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공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복각하는 것에 머리를 맞대본다든지, 우리가 매일처럼 지나다니는 길에 어떤 이야기가 스며 있는지 찾아본다든지, 집을 투기의 대상이 아닌 거주의 공간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든지, 땅이란 정말 매매할 수 있는 대상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본다든지, 공간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런 사소한 고민과 노력들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민과 노력들은 개인의 문제에만 매달려 나의 태도만 바뀌면 나의 삶은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내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다 내가 못난 탓이고 내가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며 당신의 태도만 바꾼다면 잘될 것이라는 복고풍의 독설과 질책을 팔거나 값싼 동정과 위로를 파는 이들이 다시금 난무하고 있다. 함께 잘살지 못한다면 혼자서 잘살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함에도 그것을 잊게 만드는 약장수들이 할거하는 세상이라면 더욱 더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243~244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오히려 이렇게 기억의 포로로 남은 이들을 바라보면 스톡홀롬 신드롬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납치된 이들이 납치자와 깊은 유대를 맺게 되는 일종의 스톡홀롬 신드롬 같은 것이 자아를 분열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포로가 된 시간 동안의 기억을 부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는 것이 두려울지 모른다.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기억을 정당화하고 군림을 윤색하며 그들이 저지른 것은 범죄가 아니라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며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항변을 해주는 것은 아닐까?

-266~267p,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이현석 지음, 한티재

 

우리의 삶은 발전된 편안한 곳에 놔두고, 잠깐 들러서 보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 발전이라는 허울에 파헤쳐지는 것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우리가 여행지에서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고 그들에게 불편한 삶을 강요할 수 없다는 작가의 글에 공감합니다. 함께 잘 살지 못한다면 혼자서도 잘 살 수 없다는 말도 가슴에 와서 박히네요. 개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후배들에게 말을 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를 에돌아 끊임없이 ‘지금/여기’로 돌아오는 여행

제가 이 책을 읽고 하고 싶었던 말이 겉표지에 적혀 있었네요. 저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 부분만 발췌하고 소개하다 보니 다소 심각한 책으로 비칠까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여행하며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따라가며 생각도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그러다 보면 지구 어느 곳에서도 어느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향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온라인서점에서 구입하였는데요. 구입당시 재고가 다 떨어졌다며 배송이 지연됐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읽고 싶었지만 며칠 더 기다렸어야 했고요. 결과적으론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즐거운 독서였네요. 저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