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오창익 지음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오창익 지음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인권 운동가 오창익. 이 분의 이름은 저에게는 특별합니다. 김종배가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진행할 때 일주일에 한 번 그와 함께 진행했던 인권 이야기들은 저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현재 시사통의 한 코너인 인권통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던지는 그의 인권 이야기들은 제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시각들을 산산히 부서 주곤 하고 있죠.

혹자는 그의 이야기가 정치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고도 하겠지만 그것은 온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창익의 이야기는 자칭 진보라거나 서민이라거나 하는 사람들의 방향과도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의 독특한 시각으로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이상하고 불편했던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풀어 놓습니다. 29만 원만 가지고 있는 전직 대통력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국제결혼, 국민에게 코드를 부여해서 관리하는 제도인 주민등록번호, 여론조사의 허구성과 그것이 원하는 것들, 많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경범죄 처벌 법, 24시간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살기 힘들고, cctv로 필요 이상 국민들을 감시하며, 양극화로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군대 문제와 2등은 필요 없는 승자독식의 구조와 명함이 중요한 퇴직할 때의 직함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름의 허상이 중요한 나라, 감정노동자들의 과잉친절과 끊임없이 돌고도는 돈봉투의 이야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자이면서도 강자의 시각을 계속 주입받던 우리들은 쥐똥만한 권력을 쥐었을 때를 걱정하며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던 그런 불합리함들을 오창익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지적합니다. 아마 그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가 봅니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오창익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오창익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도 잘 사는 부자 몇 명을 더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세상의 곡물을 낮은데서 위로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어 버리는 세상이 아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인권에 대한 생각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에서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가 강의를 할 때 한 학생이 자신의 인권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침해를 당한다고 했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같은 돈을 내고 타고 혹은 자신은 돈을 내고 타는데 무임승차하는 노인들에게 자리를 강제적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 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많은데요. ‘노약자’석이라 하면 노인과 약자를 뜻하는 것일 텐데 우리나라의 어떤 노인들은 약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오히려 약자는 어린이와 청년들이라는 생각이 들 경우가 많죠. 노인네들이 눈치를 주고 빈자리여도 앉아 있으면 욕먹을 자리라면 그냥 ‘노약자’석이 아니라 ‘노인’석으로 명칭을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했던 저였기에 그 학생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오창익은 말합니다. 인권이란 평등과는 다를 수도 있다고 말이죠. 더 어렵고 더 낮은 사람들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고 말이죠. 이렇게 말합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으니 그들도 이용하고 짐들은 노인들도 사용하고, 임산부들도 사용하고, 어린아이를 업은 어머니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불편하고 낮은 사람들을 위한 복지가 결국 우리에게도 편리하고 좋은 것이죠.

언젠가 이근행PD가 페이스북에 ‘세월호’에 관련해 남긴 글에서도 그런 맥락을 짚어 보게 되는데요. 물이 차올라 목까지 잠긴 사람들 앞에서 발목이 잠겨서 약간 불편한 사람들은 좀 참아 주는 것이 인간 된 도리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함께 살며 주변의 아픔을 돌아 볼 줄 아는 마음을 가지는 것. 내가 불편하면 남도 불편한 것을 아는 것.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는 나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데 정치적인 행동이라며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발붙일 수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