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오월, 피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간절한 노래

사람이 고통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작가 한강은 도대체 어떻게 썼을까 싶다. 이 책을 쓰고 나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 같다. 아니 애당초 이런 소설을 어떻게 쓸 생각을 했을까?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기 위해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여하튼 소설을 읽고 서평을 쓰는 데는 익숙하지 않는 나이기에 더더욱 이런 책을 읽고 서평이란 걸 써 내려갈 수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아직도 전두환을 ‘장군님’이라고 부르며 추종하는 세력들이 자신들의 죄를 모르고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거나 다시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회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뉴스에서 종종 접하고 있자면 가슴이 무너져 내려도 이 책은 읽어야겠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야겠다.

  매일 아침 새 관들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왔다. 큰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진 사람들의 것이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유족들이 리어카에 관을 실어 오면, 너는 관 사이의 간격을 좁혀 자리를 만들었다.
  저녁이면 계엄군과 대치한 외곽 지역에서 총을 맞은 사람들이 실려왔다. 군의 총격에 즉사하거나 응급실로 운반되던 중 숨이 끊어진 이들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형상이 너무 생생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반투명한 창자들을 뱃속에 집어넣다 말고 은숙 누나는 강당 밖으로 뛰어나가 토하곤 했다. 코피가 잘 나는 체질이라는 선주 누나는 이따금 고개를 뒤로 젖히고 마스크 위로 콧잔등을 누른 채 강당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20p 中,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그 오전 분수대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나오지 않았다. 도청 담장 앞에 던져진 주검들 옆으로, 총을 맨 군인들이 새로운 주검들의 다리를 끌고 왔다. 주검들의 등과 뒤통수가 함부로 바닥에 쓸리고 튀어올랐다. 몇몇 군인들은 커다란 방수 모포를 펴서 네 귀를 나눠 잡고, 도청 안마당에서 여남은사람의 주검을 한번에 쓸어담아 나왔다. 어릿어릿 먼 곁눈질로 그 광경을 보며 걷고 있을 때, 빠르게 다가온 군인 셋이 그녀의 가슴에 총을 겨눴다. 어디서 오는 겁니까. 이모 병문안하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태연스럽게 대답하는 그녀의 인중이 떨렸다.

그들이 명령한 대로 광장을 등지고 걸어 대인시장 어귀에 이르렀을 때, 거대한 장갑차들이 굉음을 내며 대로를 행진해 지나갔다. 다 끝났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려는 거야, 얼핏 그녀는 생각했다. 다 죽였다는 걸.

-96p 中,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소년이 온다 - 한강 장편소설, 창비
소년이 온다 – 한강 장편소설, 창비

  그렇게 가이내 같은 자석이 느이 작은형하고 싸울 줄을 누가 알았겄냐이. 이십년도 넘게 지금까장도 서로 서먹서먹해갖고 긴 이야기를 안 나누게 될 줄을. 
  느이 아부지 상 치르고 돌아와 삼우제 준비할 적이었다이. 갑자기 뭣이 깨지는 소리가 나서 달려가봤더니, 스물일곱살, 서른두살 먹은 다 큰 머시매들이 씨근거림스로 서로 멱살을 쥐고 있어야.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머니만 갔냐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것 같았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았담서, 다 알고 있었담서 네가 어떻게!
  그란게 느이 작은형이 으어어어, 말도 아니고 뭣도 아닌 소리를 지름스로 지 형한테 달라들더니 방바닥에 넘어뜨렸다이. 짐승맨이로 울부짖음서 말을 한게, 무슨 이야긴지 뜨문뜨문하게밖에 안 들렸다이.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둘이 그 꼴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말릴 생각도 못하고 나는 부엌으로 돌아왔다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맨이로 전을 부치고 산적을 꿰고 탕을 끓였다이.

-183p 中,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p 中,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차마 눈물 따위는 흘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냥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오월 광주에서 죽은 자들, 살아 있던 자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작가가 알고 있던 기억을 토대로 실존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그날 도청에서 죽은 소년을 중심으로 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도 독특하고 풀어내는 작가의 힘도 놀랍지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썼을까 싶다. 이런 문장을 몇 줄만 써내려가도 마음이 고갈될 텐데 대단하다 싶다. 공지영이 “의자놀이”를 썼을 때도 이런 심정이었겠지만 사실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싶다.

그날의 광주를 잊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때의 총칼과 다름없는 각종 악법들로 국민들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며, 서민들의 삶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경찰을 앞세워, 용역을 앞세워, 한 쪽 편만 드는 법의 곤봉으로 노동자와 학생들을 때려잡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절의 단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권력을 잡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고 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

국민들을 총칼로 죽이고, 잡아다 고문했던 시절이 생각해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짓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고 아주 잘 살고 있다. 그 당시 피해자들은 아직도 피해자다. 살해당했던 사람들은 다시 살해당하고 있다. 총칼로 대놓고 죽이던 시절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사회로 왜곡되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자꾸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고 한다. 그 억압됐던 시절을 잊고 싶은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잊기 위해 잊으면 안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대체 이놈의 사회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몇 개나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인가! 노동자가 일만 열심히 하고, 농민들은 농사만 열심히 짓고, 학생들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거리로, 사이버공간으로 쏟아져 나오게 만드는 사회는 잘 못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계속 되살아 나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