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리영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리영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2013년의 독서를 시작하면서도 고 리영희 선생님의 책으로 시작했었습니다. 바로 “전환시대의 논리”였는데요. 40년 전의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지금의 현실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당시의 국내 사회 현상을 글로 쓰기엔 어려운 시기였기에 아시아의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보여준 이 책은 오히려 국내 정치 상황의 불합리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40년 전의 책이라면 이 책은 그 20년 후에 나온 책으로 지금부터는 20년 전에 나온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고 리영희 선생님이 1992년 초부터 1994년 즈음까지 쓰신 글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여러 개의 기고글과 대담 형식 또는 인터뷰의 형식으로 쓰여진 글들이 모여져 있는데요. 핵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의 정세에 대한 분석과 지식인들, 언론인들, 그리고 역사 등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진실을 향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독서를 시작하면서 가벼운 책은 좀 삼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요. 그러는 와중에서도 이렇게 좀 깊고 폭넓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며 오랫동안 곱씹어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연 초에 읽으면 한 해의 독서 생활에 엄청난 활력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가벼운 책으로 읽은 권 수를 늘려 주는 것보다 이렇게 오래 걸리더라도 마음속에 차곡 쌓이는 책들도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변호인에서 나온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기도 혹은 논란을 주기도 했던 고 리영희 선생님의 책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다시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전반적인 방향은 이 책의 제목과 동일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처음의 글에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지도 않고서 감히 필요할 때면 인용해서 써먹고는 했지요.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라도 읽어 봅니다. 이 책의 전반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기에 외람되지만 거의 전문을 인용하여 봅니다.

그동안 펜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는 아직도 위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감이 든다. 아무래도 제정신들이 아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백주 노상에서 남의 허벅다리를 찌르지 않나, 무슨 책을 냈다고 지금도 잡아가질 않나, 누군가의 사상에 관해서 이야기한다고 어린 학생들의 주리를 틀지 않나! 그 모든 짓이 ‘좌’와 ‘우’라는 것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어찌 이리도 유치할까?

‘좌’가 뭐고 ‘우’가 뭔고? ‘좌’는 절대로 나쁘고 ‘우’는 절대로 옳다는 전도된 사고방식은, 그런 위험하고 유치한 이분법의 대표적 신봉자인 레이건이라는 사람조차 이제는 부정하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남의 나라 사람의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만 제시 잭슨이라는 미국 흑인의 말이 좋다. 대통령 입후보 경선에서 미국 사회의 제도적인 병폐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시 잭슨에게 ‘우’라는 사람들이 ‘좌’라고 비난을 했다. 잭슨이 점잖게 반박한다.

“당신네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시오, 저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날고 있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 크기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이오.”

나는 뉴스를 보면서 “잭슨, 말 한번 잘한다”고 감탄했다. ‘우’라는 것을 무슨 신성한 것인 양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이 아무 대꾸도 못 하고 나는 새만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 새에는 두 개의 날개가 있었다.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날개는 멀어서 자로 잴 수는 없었지만 나의 눈에는 크기가 똑같아 보였다.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 원리가 아닐까?

왼쪽 날개로만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싶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날개 하나로 날아 다니는 새를 보고 싶다. 그런 외날개 새를 한번 볼 수 있으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만 같다.

인류가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쳐 창조한 지식과 축적한 경험은 정치나 이념적으로 말해도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고 무쌍하다. 그리고 그 사이는 끝없이 풍부하다. ‘우’의 극단에 서면 우주의 모든 것이 ‘좌’로 보이게 마련이다. 조금 거리가 멀면 모든 것이 ‘극좌’로 보일 수밖에 없다. ‘좌’도 그 극에 서서 보면 모든 것이 ‘우’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극’의 병리학이다.

벽에 걸려 있는 불알시계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착각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한번 오른쪽 끝까지 갔다간 왼쪽 끝까지 돌아가고, 다시 그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아니 그래야만, 시계는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화가 나서 시계 불알을 오른쪽 끝에 못 박아보았더니 시계는 죽어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진자나 저울의 바늘도 중앙에 돌아와 서려면 좌와 우를 조금씩 왔다갔다하면서 편안하게 제자리를 잡는 것 같다. 그러고는 느긋이 안정을 누린다. 왜 그럴까?

8·15 이후 근 반 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야 어찌 새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23-25p 中,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한길사

20년 전의 이런 질문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진보해 왔는가 한번 고민해 보게 됩니다. 아니 고민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리다고 손가락질하고 매도하고, 분명히 틀린 것을 ‘그냥 다른 거야’라며 슬며시 외면하는 나 자신의 비겁함을, 아프지만 똑바로 대면해 보았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리영희, 한길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리영희, 한길사

나는 이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어디서 왔는가를 그들에게 깨우쳐주어야 할 도의적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 말을 이었다.

“이토록 생명같이 귀중한 학문과 사상의 자유는 하느님이 하늘에서 내려준 은혜도, 국가권력이 하사한 선물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 대학에 들어온 너희들의 선배가 자유의 생명을 말살하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에 대항해서 수없이 많은 목숨을 버리고 피를 흘리고, 고문을 당하고 형무소에서 신음한 결과로 획득한 고귀한 열매다. 인간의 자유와 공민의 권리를 교육과 법률로 말살하려 했단 군사독재체제와 그 광신적 반공주의에 맞서서 싸운 선배들에게 너희들은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그 열매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빼앗기면서 싸웠던 것이다. 알겠니? 무지한 사람은 자유인이 될 수 없어. 너희들은 젊다. 학교 공부와 교외의 활동과 뜨거운 사랑을 하면서도 적어도 한 달에 열 권의 책은 읽을 수 있다. 시큰둥할 시간이 어디 있으며,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483p 中,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한길사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에서는 민주화 투쟁이 하나의 흐름이고 문화였는데요. 그것을 대단한 시절의 이야기인 양 떠들어 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 한 두 권 읽고 집회 한 두 번 참여하고 나서 독립투사나 된 듯이 의기양양해 하던 치기어렸던 행동들이 생각나 부끄러워집니다. 얄팍한 지식으로, 달뜬 열정으로, 빈속에 소주를 부어대며, 세상물정 모르고 떠들어 댔던 시간에 책 한 권, 제대로 된 지식 하나라도 더 배웠어야 했던 건데 말입니다. ‘그때로 돌아가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짓이겠지요.

영화 “변호인”의 대사 중에서 ‘자식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송강호분이 하는데요. 영화를 보시면서 많은 분들이 뭉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살아간 선배들의 노력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일궈놓은 민주주의라는 텃밭도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관리하고 정성 들이지 않는다면 온갖 잡초들이 자라나 밭을 망쳐 놓게 됩니다. 실제로 요즘은 ‘과거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적 자산을 후세대들에게 물려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역사를 ‘똑바로’ 기술하고 있는가

소위 ‘일본 교과서문제’도 그렇다. 일본 정부가 검정하는 각급 학교 역사교과서가 조선 침략, 식민지통치, 조선인의 일본화, 전쟁기간의 강제 징병·징발, 정신대… 등에 관해 진실을 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다. 1982년과 85년에 일어난 한국 국민의 분노와 항의운동이 그것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사회생활교과서는 당연히 바로잡아져야 하며 우리의 항의는 정당하다. 그리고 끝까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역사를 똑바로 쓰라!”고 고함치고 삿대질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정교과서는 ‘역사를 똑바로’쓰고 있는지를 따져본 일이 있는가? 일본 통치시대의 물리적인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의 주체세력은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교과서는 이들 항일 독립투사들의 투쟁과 업적과 희생을 한가지인들 기술하고 있는가? 해방 이후 한국의 각 분야에서 권력을 잡은 인물들(거의 예외없이 반공주의자)의 일제치하의 친일행위·반민족행위를 밝혀서 기술한 대목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

-354-355p 中,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한길사

20년 전에 벌써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 교과서 문제를 예견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역사를 바로 쓰지 못하면 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반복돼서 일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쩌면 20년 전 보다 더 부끄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지만 내부의 성찰과 비판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자신에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들어 그들을 비난하고 죄과를 따질 때, 우리 자신은 민족으로서, 국가로서, 국민으로서, 또는 정부나 집단이나 개인으로서, 스스로의 역사를 돌아보아 아무런 부끄러움도 참회의 괴로움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않을 수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341p 中,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한길사

이 책에서 좋은 문구,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발췌하려면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꽤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져주며 국내외 정세를 통해 우리나라의 주변국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더불어 역사와 언론, 종교, 문화, 통일, 사회주의의 붕괴, 핵 문제, 그리고 자신의 독서 편력까지 다양하게 담아냅니다. 그렇기에 독자에게도 폭넓은 지식과 사고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 책에서 그렇듯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곱씹어서 생각해봐도 정말 훌륭한 문장이 가득한 책이네요.

제 개인적으로 2013년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 보려고 노력을 했는데요. 하지만,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지식의 깊이가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그 간 읽어 보고 싶었던 책들을 비롯해서 조금 깊은 독서를 해 볼까 생각해 봅니다. 2014년에 처음을 이 책으로 열게 되어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