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경제학 고전에 공동체의 행복을 묻다 – 조형근, 김종배 지음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경제학 고전에 공동체의 행복을 묻다 – 조형근, 김종배 지음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첫 문장을 어떻게 떼야 할까 고민하다 그냥 이렇게 무작정 시작해 본다.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문장이 무엇일까? 오늘 나를 사로잡았던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 부모가 아이에게 행하는 폭력, 강자에 의한 약자에 대한 폭력 등이다. 이런 폭력들은 폭력을 행한 사람의 입장에서 합리화되기 일수인데 예를 들면 독재가 있었기에 이만큼 잘 산다거나 부모의 강요나 선생의 사랑의 매가 있어서 성공했다 따위로 미화된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배드민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테니스로 넘어가고, 스포츠에 대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골프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우리나라 운동선수 부모가 아이들을 보는 사람이 있는 앞에서도 욕하고 뺨을 때리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렇게 운동을 했기에 LPGA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설사 이런 이야기가 옳다고 해도 동의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분석한 것이 나오는데 절대적인 착각이라고 증명한다. 결코 폭력의 결과가 스스로 하는 것의, 칭찬으로 이끌어 주는 것 이상의 결과를 끌어 내지 못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쉽게 폭력자, 권력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에 동의한다.

어떤 결과는 오로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의 깊이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에는 평균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의 위아래로 결과물이 얻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가 폭력으로 인해 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폭력으로 운동을 시켜 상위권을 유지한 세계골프라면 덜 맞아서 한국축구는 그 수준인 것일까? 히딩크가 와서 외국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해서 4강을 했던 것일까? 그 당시 언론들은 한국스포츠의 교육방식을 너나나나 할 것 없이 헐뜯으며 히딩크의 방식을 찬사했었다. 이렇게 간단한 예만 들어 봐도 ‘때려서 잘 됐다’라는 이야기의 근간이 부실함은 쉽게 밝혀진다.

이야기의 결이 다르지만 ‘폭력의 미화’는 이렇게 작게는 부모가 아이에게 ‘그래도 내가 닥달해서 이만큼이라도 하지’라고 하는 것과 크게는 역사가들이 일제식민지시대가 있어서 이만큼 현대화가 됐지’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제는 형태를 달리해서 그럴듯한 이야기로 그럴듯한 논리로 무장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익을 독점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까지 도달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위해서 비정규직 일자리와 아르바이트에 열정을 넘어 목숨을 걸지 않으면 ‘눈이 높거’나 ‘게으른’ 인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한다. 월급을 조금만 올려달라고 하면 ‘귀족’소리를 들어야 한다. 경제를 망치는 주범의 누명도 뒤집어써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기 힘든 서민들에게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들먹이며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공세를 한다. 그것을 거부하면 망하는 게 자명하고 반박하면 빨갱이에 다름없게 된다. 과연 그럴까?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은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칭송해 마지않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정말 그런 것인지 그들의 이론으로 대답을 하는 책이다. 김종배와 조형근의 질문과 답변으로 만들어져 있는 이 책은 상당히 쉽고 읽기 좋다. 그래도 시간이 나지 않아 읽기 힘드실 수 있으니 아주 오랜만에 많은 부분을 발췌하는 방식으로 끌어 나가고자 한다. 책은 읽지 않으시더라도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발췌한 부분은 꼭 읽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좀 더 마음이 동하신다면 책으로 접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조형근, 김종배 지음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조형근, 김종배 지음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아니, 사실은 비판이 있는지도 모르는-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종교 경전이 된다. 학생들은 맨큐가 말하는 대로 믿는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들의 상태를 개선하기는커녕 청년층 미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증가시킬 뿐이고, 튼튼한 사회복지 제도를 자랑하던 독일은 바로 그 복지 때문에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프랑스처럼 세율을 높이다가는 사람들의 근로 의욕이 떨어지니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이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등등. 이것이 바로 한 해에도 수십 만 명이 대학에서, 공무원 입시 학원에서 배우고 시험 치는 경제학 입문의 ‘과학적 진지’들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지배 이데올로기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자조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무기력은 경제학이라면 그것밖에 없는 줄로 알게 한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다. 그 말석에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머리말 중, 조형근

 

하지만 이는 왜곡된 사실의 전파였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의 요지가 아니라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개념인데도 핵심 뼈대로 왜곡됐고, 조지프 슘페터의 ‘혁신 기업가’는 아버지 잘 만나 대기업 지분을 물려받은 자본가를 뜻하는 이가 아니었는데도 자본가 찬양가로 왜곡됐다. 애덤 스미스가 누구보다도 노동자의 권리를 앞장서서 옹호한 사실은 감춰졌으며, 조지프 슘페터가 돈 벌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한 자본가들을 경멸했다는 사실 또한 봉인됐다.

-머리말 중, 김종배

 

먼저 고임금 문제부터 살펴볼까요? 스미스는 한마디로 “임금을 많이 줘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고임금 지급으로 국부가 증가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성과급을 주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게 된다.”라고도 이야기하는데요. 그런데 성과급 줘서 일 많이 시키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과급 중심으로 가면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일을 열심히 하다가 직업병이 생겨 몸이 망가지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너무 일 열심히 하지 못하게 말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이 양반은 “일주일에 나흘 일하면 사흘은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4일제, 21세기에 봐도 너무 앞서나간 주장이네요.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극렬 종북 좌빨이라고 욕을 할 법도 합니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패륜아들 中

 

김 : 에이, 부시와 공산주의라니 너무 안 어울리지 않습니까?

조 : 자본주의라면 가만히 놔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기업인 AIG를 사실상 국유화하고, 제너럴 모터스 같은 회사도 지분의 80퍼센트를 인수하면서 살렸어요. 이런 식으로 세금을 퍼부어서 사기업들을 살렸습니다. 이게 뭐냐, 공산주의 아니냐는 거예요. 이익 났을 때 자본가들이 국민들에게 돌려준 적이 있나요? 그런데 손해를 왜 세금으로 메우냐는 거예요. 한마디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겁니다. ‘이익은 자본주의적으로 개인이 다 갖겠다, 손실은 사회주의적으로 국민들이 다 메워라.’, 이건 반칙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카를 마르크스, 신용공황과 현대 금융위기 中

 

조 : 노동자계급 내부의 양극화야말로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와 수탈의 결과물이자 그것의 조건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노동 착취와 수탈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보면, 같은 작업장에서 동일노동 혹은 유사한 노동을 수행하는데도 비정규직에게는 적은 임금을 주는 것은 착취이면서 수탈이죠. 그 결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이런 노동자계급 내부의 양극화가 공고해질수록-이걸 앞에서 노동시장 분절이라고 말했습니다만-노동자들 간의 경쟁과 반목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 앞에서 노동자들은 점점 힘이 약해지죠. 그래서 더욱 착취가 용이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정규직이 파업을 하면 자본가들은 비정규직에게 대체근로를 지시합니다. 파업이 승리하려면 비정규직이 같은 노동자계급으로서 단결투쟁을 해줘야 되는데, 이들은 신분 불안 때문에 대체근로를 할 수밖에 없어요. 안 하면 잘리니까요. 그럼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욕하게 됩니다.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그런 정규직이 원망스럽습니다. 비정규직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언제 한 번 제대로 싸워준 적도 없으면서 자신들을 욕한다구요. 그래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동정하면서도 불신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부러워하면서도 원망하게 됩니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카를 마르크스 2, 착취는 끝나지 않았다 中

 

얼핏 보면 마르크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살핀 사람이죠. 경제가 시장에 지배당하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경제만을 추구하다 보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황폐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 사람. 본래는 결코 상품이 아닌 노동, 토지, 자본이 상품으로 바뀔 때 어떤 재앙이 닥치는지를 알려준 인물입니다.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 삶,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인물이지요.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칼 폴라니,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中

 

정부가 경제 상황을 그때그때 판단해서 개입하려고 하다가 오판할 개연성은 언제나 있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제도적인 방법, 소위 사회복지 제도입니다. 대표적으로, 매우 높은 누진세율과 광범위한 복지 수당의 지급입니다. 이 두 가지 제도가 튼튼하게 자리를 잡은 국가에선 정부가 경기변동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서 특별히 개입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예컨대, 불황이 닥치면 사람들이 실직을 하거나 소득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누진세율을 높게 책정해둔 국가에선 소득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세금도 대폭 줄어듭니다. 자동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효과가 나타나지요. 또한 광범위한 수당 제도가 확립되어 있으면, 실직당하는 순간 수당이 나옵니다. 역시 정부가 따로 공공사업을 벌이는 등의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도를 통해 경제 상황의 안정을 기하면 국민들이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존 메이너드 케인스 1, 저축에 저주를 中

 

언젠가 케인스는, 처방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정보가 바뀌면 결론을 바꿉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케인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2차대전 때처럼 전쟁이 항상 경기를 일으켜 세울 리는 없습니다. 이 점은 2차대전과는 달리 명분도 없고 사회적 지지도 받지 못했던 베트남전쟁이 잘 보여주었지요. 삽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케인스는 이미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부터 전쟁을 통한 과도한 재정 팽창을 우려하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정치인들은 몰랐나 봅니다. 전쟁으로 재미 보는 행운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는 사실을, 한국의 상당수 정치인들도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삽질이 항상 대안은 아니라는 것을.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존 메이너드 케인스 2, 삽질과 수정자본주의 中

 

슘페터를 자본가의 혁신적 역할과 그에 대한 막대한 보상을 정당화한 인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마르크스 찬양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비전에 대한 슘페터의 동의와 찬미,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결국 오류로 드러났으므로 슘페터의 마르크스 찬양 또한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모든 위대한 사상가들이 그렇듯이 슘페터도 오류를 범한다. 그런 관대한 눈으로 마르크스를 보면 된다.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오류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으면서도 그의 위대함을 직시할 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사상의 차이, 심지어 적대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진리를 직시하는 용기의 힘이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다 中

 

베블런이 볼 때, 땀 흘려 일한 대가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사회의 최상층이 아니며, 그래서 타인들로부터 참된 복종과 존경을 얻기 어렵습니다. 사회의 최상층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계급, 즉 유한계급입니다. 이 유한계급은 자신들이 땀 흘려 부자가 된 졸부나, 한국식으로 말하면 개천출신으로 용이 된 케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시함으로써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최대한 무익한 곳에 부를 낭비하고, 최대한 효용과 상관없이 과시적으로 소비를 즐기는 것입니다.

베블런은 사람들에게 모방 본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위계층들도 유한계급을 따라서 과시적 소비를 하게 됩니다. 물론 경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유한계급만큼 엄청난 과시적 소비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합리적 소비가 아니라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모두들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한 과시적 소비를 하고 있는 셈이라는 말입니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소스타인 베블런, 과시적 소비의 힘과 함정 中

 

우리는 스스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 정도쯤은 소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비합니다. 소비는 이제 현대자본주의의 사회 언어가 되었고, 심지어는 우리의 자아 자체가 소비에 의해 구성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이런 과시적 소비가 유난히 심하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과시적 소비에 말려들수록 피곤해지는 쪽은 사실 서민들입니다. 삶의 의미를 소비에서 찾는 소비적 자아의 소유자가 되어버리면 진짜 삶의 문제는 뒷전으로 물린 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소비 경쟁 속으로 내몰리기 때문이죠. 사실 자본도 문제고 정치도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풍조에 생각 없이 휩쓸리기만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지음, 반비 출판, 소스타인 베블런, 과시적 소비의 힘과 함정 中

국민들, 서민들, 그리고 노동자. 필요에 따라 불리는 호칭은 다르지만 결국 대상은 하나다. 바로 우리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참 순진했구나 아니 멍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위대한 역사적 경제학자들의 유명한 저서를 읽어 봤을 리가 없는 사람들이 필요한 말만 쏙 뽑아 진실을 왜곡시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주입시키기에 사용했다. 그걸 우리는 똑똑한 놈들이 하는 말이니 그 말이 맞겠거니 하면서 수긍했다. 혹은 이상했지만 노동자가 뭘 아나 하는 생각으로 질문을 포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두로 떠오르는 단어가 ‘안전’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불안전’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효율성이라는 말로, 이윤극대화라는 말로 사람의 목숨보다 원가를 아끼고 자본가의 이익을 챙겨주려고, 아니 자신들이 자본가이니 결국 자신들이 이익을 챙기려고 했던 결과이다. 그것이 이제 걸어 다니는 곳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까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부주의했던 개인에게 몰아버리려고 하고, 결과는 이런데 계속 발목을 붙잡혀 있으면 서민경제가 힘들어진다로 귀결되며 다시 잊자고 할 것이다. 바로 그 경제 살리기라는 말장난에 속아 잊었던 것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제는 성장도 좋지만 ‘어떻게?’라는 방향성에 대한 질문도 필요한 때다.

요즘에는 한국현대사를 공부한다고 “이이제이”를 듣느라고 잘 듣지는 못하지만 김종배의 “시사통”의 한 꼭지인 “경제통”을 들으며 알게 된 조형근의 저서인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부제 경제학 고전에 공동체의 행복을 묻다는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지식을 쌓게 해 주었고,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꼽사리다”를 듣다 보면 항상 김미화가 외치는 소리가 있는데 바로 이렇다. “정치는 쫄지 마, 경제는 속지 마”다. 그렇다 속지 말아야겠다. 오랜만에 읽어 보는 깊이 있는 책이라 참 좋았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아서 더 좋았고. 그리고 어렵겠지만 “유한계급론”을 읽어 볼 생각이 생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