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제 또래의 한국 남자 치고 음악과 영화, 연극에 대한 로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 또한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한때는 극장에 살다시피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안 보는 영화만을 골라보고 감동받던 그런 시절이 말이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쩐지 머리 아프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보다는 한 번 보고 웃어넘기는, 극장을 나서면 절대로 기억나지 않을 영화들을 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 이제는 IPTV로 방송해주는 것들이나 집에서 가끔 뒹굴거리면서 보게 됩니다. 사실 영화보다는 이제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같은 예능을 무뇌아처럼 낄낄대고 보고 있죠. 요즘엔 ‘1박2일’에 빠져 있습니다.

독서를 시작할 때 사실 공부가 되는 책들만 보려고 했기에 좋아하는 분야의 탐독은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이동진님의 책이 나왔을 때는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구입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750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의 감독들과의 인터뷰. 생각보다 내밀하고, 생각보다 신선했으며, 생각보다 좋았고, 생각보다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감독들의 사진들은 꽤 좋았습니다.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이렇게 6명의 감독들에게 그들의 영화에서 나온 대사를 가지고 부메랑처럼 돌려서 그들에게 질문을 쏟아붓습니다. 때로는 감독조차도 인식하지 못 했던 분석으로 감독에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 보게 하는 질문들도 참 신선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당시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에 깜짝 놀랐던 느낌을 빼놓고는 어떤 영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죠. 그의 영화들은 너무 사실적이고 남자들의 비겁하고 추잡한 내면을 너무 잘 드러내고 있기에 불편해서 그런지 본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텍스트로 질문하기 위해서 인용한 대사들을 보고 있으니 참 야릇하더군요. 어쩔 땐 확실히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이 더 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는 나름 신선하게 보았던 기억이 있었고요. 그 후의 작품 전부를 보지는 못했지만,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보았던 작품의 이야기나 대사가 나올 때는 집중이 잘 됐습니다. 특히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가 좋았는데요. 류승완 감독은 ‘노동’이란 단어를 좋아하고, 다른 감독들은 ‘예술가’지만 자신은 ‘기능공'(정확히 이 단어였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뉘앙스였습니다.)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숙련되게끔 노력하고 스태프들과 합심해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이야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의 발언들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상식’을 당연시하며 ‘비상식’적인 것에 분노하는 삶의 태도, 그리고 항상 도전하는 모습, 또 그것을 영화에서 보여주었기에 더욱더 애착이 가는 인터뷰 내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하지만, 뜻밖에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서 실망하고 말았는데요. 예전엔 영화라는 매개체로 하나 되었던 스태프들의 모습이 요즘엔 그렇지 않다며, 작업이 끝나면 다들 PC방으로 흩어지고 하는 모습이 아쉽다고 말하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갔지만, 그 표현을 하면서 사용한 이야기가 예전에 감독이 눈이 많이 쌓인 산에서 카메라 앵글을 가리키며 “여기 보이는 거 다 치워” 이러니 스태프들이 달려 들어서 불평 없이 제거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자 그 감독이 “여기가 아닌 것 같아”라며 앵글을 조금 돌리자 또 수백평의 눈을 치워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현장에서 경외의 대상이던 여배우가 조명부 막내 같은 스태프에게 뭔가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던지면 감격했는데 요즘엔 시큰둥하다며 “정서적으로 민주화됐다고 할까요? 감성적으로 메마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아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이 이렇게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앞서 어떤 감독님은 감독이란 직업이 스태프들의 꿈을 담보로 잡아 이용해 먹는다고 반성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던 것에 대비해서 실망스러운 발언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노동권은 왜 이렇게 무시당해야 하는 건지.. 상 받을 때는 스태프에게 감사하지만, 정작 그들이 임금체불이나 기타 생활고에 시달릴 때는 무엇을 했는지 내부의 ‘갑’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태프들에게 선심성으로 무엇인가 돌리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는 것보다 자신들의 임금 대비 스태프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은 어느 수준이 적당한지 생각해 주는 것이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요? 한국 영화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엄청난 예산의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고 있고요. 하지만, 몇몇 유명한 배우들과 감독들, 그리고 배급사를 제외한 현장에서 ‘꿈’을 저당잡혀 일하고 있는 많은 스태프들의 삶의 질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궁금한 것은 어쩔수 없는 저의 성격인가 봅니다. 이 책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일 텐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저도 참 편협합니다. 작가가 “조선일보”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경계의 시선을 보내며 불편하게 느끼게 되는 걸 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꽤 밀도 있는 질문들을 치밀하게 준비해서 감독들에게 꽤나 많은 이야기를 끌어 냅니다. 그 많은 분량의 페이지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게 말이죠. ‘이렇게 조각내고 칼질하고 분석하며 영화를 보면 참 재미가 없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덕에 저 같은 독자들은 즐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