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 정호승 시집

밥값 – 정호승 시집

밥값

정호승

그도 변하고 나도 변했나 보다.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를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낭독을 해 주신 이후 그의 시집에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의 시에는 낮은 자들의 삶과 아픔을 어루만지는 무엇이 있었다. 그 당시 교회에 다니며 봉사활동과 중창단 활동도 꽤나 열심히 한다고 했던 나에게는 우리가 사는 곳의 아픔을 예수님이 어루만져 주시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시에는 연민이 있었다. 항상 누군가를 안되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났고 그 당시 유행하던 제목이 아주 길던 사랑타령이나 하는 시집과는 격이 달랐었다. 남의 아픔을 돌아 볼 줄 아는, 지나온 세월을 아쉬워 할 줄 아는 그런 문장이 가슴을 울렸었다. 그리고 대학교 당시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던 “희망의 노래” 노래책에 가사가 붙어 다시 만나게 됐다.

하지만 이제 시집을 찾아보는 사람이 적어서 일까? 아니면 그도 무엇인가 변해서 일까? 아니면 내가 그 당시처럼 감정이 풍부하지 못한 것일까? 아마 그 모두이리라. 사실 “서울의 예수” 시집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었다. 남문에 있는 서점을 몇 군데 물어 물어 뒤져야 구할 수 있었고, 너무 좋아서 선물도 자주 했기에 주문을 하고 며칠 있다가 구할 수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그만큼의 감동을 받기는 힘들었다. 사실 시인의 말대로 시인이 평생 하나의 시를 남기기 위해서 산다고 하는데 모든 작품이 내게 절절하게 울리는 게 더 이상하긴 하겠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고 역시 시인은 시집으로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회사 약식 도서관에 그의 시집 “밥값”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빌려 와서 읽었다. 역시 20년이나 지난 마음을 다시 느낀다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메말랐겠지. 내가 메말랐겠다. 술이나 위장에 부어 넣을 줄 알았지 시 한 편 가슴에 넣어 준 지가 너무 오래됐으니 그 맛을 잊어버렸겠다.

부쩍 짧아진 문장들과 예전보다 땅에서 멀어져 공중에 뜬 듯한 표현들이 아쉽기만 했다. 예전에는 감성적인 단어들과 폭넓은 표현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내가 너무 현실적이 되었나 보다. 아쉽지만 어쨌든 “밥값”을 읽으며 과거를 되돌아보며 추억도 해 보고 내가 느낄 만큼만 느껴 보았던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해설 같은 것은 시집에는 치워 버렸으면 좋겠다. 교과서도 아니고 시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읽는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꽤 마음에 들었던 시 한 편 소개하면서 마친다. 끝.

 

밥값 - 정호승 시집
밥값 – 정호승 시집

 

점자시집을 읽는 밤

늙은 어머니의 잠든 얼굴 곁에서
더듬더듬 점자시집을 읽는 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보다는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점자시집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밤
별들이 내려와 환하게 손가락으로 시집을 읽는다
시들이 손가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린다
손가락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시집을 적신다
그래. 그래
나는 이제 희망을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잔인한 희망의 미소도 더이상 증오하지 않기로 한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오직 고통의 방법일지라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말라고
희망에게 쓰는 편지도 이제 그만 쓰기로 한다
사랑은 날마다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젊은 별빛들이 내 손가락 끝에서
환하게 점자시집을 읽는 밤

– “밥값”, 정호승 시집, 창비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