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끝에 다시

그 길 끝에 다시

그 길 끝에 다시
그 길 끝에 다시

그 길 끝에 다시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7명의 소설가들의 단편들. 여러 개의 시선들.

소설 “그 길 끝에 다시”는 “도시와 나”의 국내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시와 나”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해 보거나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 책만을 보고 평가를 해봤을 때는 여행소설집이라는 말이 어울린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의 식견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전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글이 쓰여졌다고는 하나 사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쓰여진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 배경들은 다른 배경으로 대체가 되어도 별로 이상할 것 같지 않았기에 특별히 배경의 중요함을 느끼기도 힘들었습니다. 윤고은 작가의 제주를 배경으로 한 “오두막”은 예외로 해야겠습니다만 말이죠.

하지만, 다른 이유로 여행소설집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동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책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부분인데 ‘삶’이라는 ‘여행’의 어느 막다른 골목에 서서 상처를 바라보고 치유하며 아주 작더라도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책 표지의 글처럼 ‘여행이 아닌 삶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 끝에 다시”는 백영옥의 속초를 배경으로 한 “결혼기념일”, 손홍규의 정읍을 배경으로 한 “정읍에서 울다”, 이기호의 원주를 배경으로 한 “말과 말 사이-원주통신2”, 윤고은의 제주를 배경으로 한 “오두막”, 함정임의 부산을 배경으로 한 “꿈꾸는 소녀”, 한창훈의 여수를 배경으로 한 “여수 친구”, 김미월의 춘천을 배경으로 한 “만보 걷기”라는 7편의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단편’이라는 말과 ‘소설’이 만나서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기억의 ‘단편’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짧은 소설의 특성이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완결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보다는 장편소설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들을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과 의문이 들어서 저의 생각 또한 상상의 여행을 떠나 보기도 했습니다. (절대 안들호로 보낸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순서로 배치되어 있던 백영옥의 속초를 배경으로 한 <결혼기념일>은 상당히 좋게 읽었습니다. 반복적인 문자메시지가 감정선을 끊어 내기도 해서 살짝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그 점이 바로 주인공이 느끼는 짜증스러움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혼기념일>은 결혼을 하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인생의 선택지에서 언제든 자신에게도 생길 수 있을지 모르는 불행에 대한 공포심을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가정’과 ‘일상’의 평범함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건 빚뿐이었다. 이혼할 즈음, 호탕하던 그의 성격도, 웃음도, 그에게선 점점 사라져버렸다. 남편은 해파리처럼 투명한 인간으로 변해갔다. 위선도 위악도 없는 투명한 인간, 겉과 속이 똑같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인간. 보호색도, 어떤 색깔도 가지지 않은 무색 무취의 인간, 그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경제적 궁핍이 정신적 파탄으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을 그때의 우리는 한번도 경험한 적 없었으므로 이혼을 확정받고 법원 앞에서 헤어지며 그가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네 월급 통장 압류 곧 풀릴 꺼야. 빨리 못 헤어져줘서 미안하다.”

-26~27p 

고통스런 결혼생활의 한 시절을 보내고 견뎌내며 자신들을 관성에 빠져 서로를 인질로 잡고 있는 인질범으로 표현하는 부분도 상당히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결혼생활 초반에 경제적 궁핍을 아내에게 선사(?) 해줬던 경험이 있었고, 제 자신의 욕망과 헛된 망상을 가다듬지 못했다면 겪었을 수도 있었던 경험이어서 더욱 가슴속에 꽂히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요즘도 아주 지루한 직장생활에 지치다 보면 탈출하고 싶어질 때가 많은데요. 소설 속의 상황과 같은 악몽을 생각하며 널뛰는 욕구를 다스리기도 합니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배경으로 다루어진 지역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에겐 저와는 다른 느낌으로 소설이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역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의 여행이 더 많이 느껴졌던 소설들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소 완성도나 사실감, 그리고 밀도에선 떨어지는 느낌들도 있긴 했지만 이렇게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아서 소설집을 만든 기획에도 많은 지지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말과 말 사이-원주통신2″에서 다루어진 4명의 친구 관계에서 보여주는 말들과 생각들은 ‘남성’인 저의 이중적인 사고방식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관계는 사실 우리나라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치사한 딴지지만 저로서는 저의 여자친구가 2:2로 불알친구들과 섹스에 대한 농담까지 마구 해대며 어울리는 것을 용납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꿈꾸는 소녀”에서 외국인 여자가 유색인종에게 아주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화류계’라고 해서 절대 좋은 처우를 해줬을 리가 없다는 현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맞고 시어머니에게도 맞으며 한국인들이 ‘결혼’을 했다기 보다 ‘돈 주고 사 온’ 여성을 대하듯 대하는 사람들과 백인에게 우리가, 그러한 것보다 더하게, 다른 유색인종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회적 폭행 속에서, 어쩌면 차라리 ‘몸 파는 일’이 더 아름답고 꿈같던 시절로 느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와 예전 소설들을 많이 읽어 봤어서 그런지 이 단편소설들 중에서 특이하고 기발하다고 느낀 작품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로 읽는 책들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어휘들과 흐르는 감정선들, 그리고 가벼운 듯 무겁게 터치하듯 그리고 가는 사회문제들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다시”라는 제목처럼 막막하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던 소설의 끝자락에선 ‘다시 처음으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게 비록 별다를 것이 없더라도 말이죠. 인생이 다 그런 거니까요.

적어도 저 개인에게는 7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잊었기를 바랬던 많은 생각과 과거의 실수, 상처들을 끄집어 내어 씻어주고 약을 발라 다시 묻어 두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묻어 두면 뭐가 달라졌냐고 말씀하신다면 끄집어 냈던 것 자체가 이미 달라졌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7명의 작가의 글이 모여 책이 되어 주니 독자에게는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들을 읽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도시와 나”를 읽어 보고 싶다는 욕구는 강하게 일어납니다. 조만간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선물 받아 읽고 작성 되었던 글입니다. 다소 개인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