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 조지 오웰

1984 – 조지 오웰

1984

조지 오웰 지음

고전이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지 않은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요즘 가끔 사회경제 관련 책들을 읽으며 머리가 아플 때는 고전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걸리버 여행기”, “올리버 트위스트” 등을 읽으며 어렸을 때는 알기 힘들었던 소설의 의미를 다시 알기도 하고 거장들의 문장에 놀라기도 했다. 사람들이 왜 고전 다시 읽기에 빠져드는지 약간은 이해가 된다.

하루키의 “1Q84″를 읽고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하며 읽으면 더 재밌을 것이라는 조언에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더클래식 출판사에서 영어 원본과 번역본을 묶어서 “레 미제라블” 5권 세트와 “1984”를 정말 저렴하게 판매하기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이제 이런 할인 행사는 오늘부터 볼 수 없겠지. 아쉽다.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동물농장”, “페스트” 등의 읽고 싶은 책들을 털어 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샜지만 결론적으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는 동안 하루키의 “1Q84″를 느낄 수는 없었다. 아마 반대의 순서로 읽어 갔다면 다른 느낌일 수 있었겠지만 내가 읽은 순서대로는 그랬다. 디스토피아의 세계관과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비슷한 것 같다. 그건 아마 조지 오웰의 영향을 하루키가 받았기 때문이겠지.

두 소설의 유사함을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이런 작품이 1949년에 출간이 되었다니 더욱 놀랍다. 어쩌면 지금이기에 더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당시에는 정말 황당한 픽션소설이라고 생각하고 공산주의를 비판한 소설로 해석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이 소설에서 표현하는 디스토피아는 우리의 권력자들이 지향하는 국가관과 무섭도록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4 - 조지 오웰
1984 – 조지 오웰

 

책의 내용은 간단하게 이렇다. 1949년도에 조지 오웰은 미래를 이렇게까지 내다봤나 보다. 1984년-정확한 날짜 개념이 없어져서 그 정도라고 추측한다-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의 3개 초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 오세아니아에서 살고 있는 윈스턴은 24시간 개인을 감시하고 교육하는 텔레스크린 앞에서 생활을 한다. 그것은 윈스턴 개인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하층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받는 감시였다. 그가 하는 일은 정부 기관 중 하나인 진리부에서 과거의 일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될수록 정부에 드는 의문과 빅브라더에 대한 불신, 그에 저항하는 골드스타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신뢰가 생겨 난다. 그렇게 윈스턴은 내부의 작은 변화와 아주 미미한 반항을 시작한다.

그러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여인 줄리아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반역인 세상에서 그 둘은 끝이 보이는 사랑을 한다. 때로는 희망을 꿈꾸기도 하지만 결국 불행해질 걸 아는 사랑을 말이다. 결국 그 둘은 정부기관에 잡히게 되고 모진 고문 끝에 정신까지 굴복당하고 윈스턴은 끝내 살해당하고 만다. 소설에 희망은 없었다.

24시간 감시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언론으로 잘못된 세계관을 퍼뜨리고, 국민을 납치하여 고문하고 죽인다. 끝없이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결국 마음의 한 자락 정의도 남겨 두지 않고 굴복 시키는 그 장면들의 묘사를 볼 때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픽션이라고만 느껴졌다면 웃어넘길 수 있는 장면들일 텐데 그렇지 않았다. 2016년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오로지 순수한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무섭도록 우리가 “성장”이라며 나아가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결국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나는 영화들도 많았다. “이퀼리브리엄”, “트루먼쇼”, “더 기버”, “엘리시움”, “브이 포 벤데타”,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이 많이 났다. 감정마저도 범죄가 되는 사회. 필요에 따라 역사도 다시 쓰여지는 사회가 돼서는 안되겠다. 사랑이 반역이 되는 사회가 돼서는 정말 안되겠다.

나도 참. 이깟 소설책이 뭐라고 현실과 혼동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충격을 받았나 모르겠다. 소설은 허구인데. 소설은 소설일 뿐인데. 하지만 현실과 자꾸 오버랩되니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세상의 끝을 본 사람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다. 조지 오웰, 그는 세상의 끝을 봤던 것일까? 2016년의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우울하다.